동북항일연군 활동기(김일성 자필 보고서)

●  동북항일연군 김일성의 자필 보고서(사료)자료


1930~40년대 만주와 연해주 지역의 사회주의 운동 관련 자료들이 러시아.중국등에서 속속 공개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동북항일연군 활동시기에 김일성(金日成)이 작성한 보고서중 일부가 최근 공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항련 제1로군 약사」(약사),「김일성이 주보중(周保中).김책(金策)에게 보낸 서신」등이 그것이다.
 
 
이 보고서들은 북한정권의 지도자로 부각되기 전에 김일성 자신이 직접 작성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중「제1로군 약사」는 1942년 만주에서 활동하다 연해주 지역으로 간 김일성이 당시 동북항일연군 제5군장이던 주보중에게 동만주에서 활동했던 제1로군의 역사를 정리해 보고한 것이다.

 
이 자료를 공개한 김우종(金宇鍾.흑룡강성 중국공산당 역사연구소)소장은 『이 문서의 집필자는 김일성 주석으로 처음 원고에는 본명이 명기돼 있었는데 당중앙에서 ×××로 고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적과 우리역량 큰차 (고군고투)苦軍苦鬪 실패 기록

 

 



이 기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33년 왕청유격대(대대장 양성룡)가 조직될 때 정치위원으로 선출되었고,34년 2월 동만주에서 활동하던 유격대들이 인민혁명군 제2독립사(사장 (주 전)朱 鎭)로 개편되었을 때는 제3단(團)의 정치위원이었다.
 
 
36년 인민혁명군이 동북항일연군으로 개편되자, 김일성은 제1로군 2군(軍) 6사(師)의 사장으로 활동했다. 38년 11월 1로군은 3개의 방면군으로 통합 개편하는, 최후의 부대편성을 했다.
 
 
 이때 김일성은 제2방면군 최고지휘자로 임명된다.
 
 
「약사」에서 김일성은 40년에 소련령으로 넘어간 사실도 기록했다.특히 김일성은 「무장투쟁이 적과 우리의 역량이 지나치게 차이가 나고 외부원조가 없어 고군고투(孤軍苦鬪)는 마침내 일시적으로나마 실패로 귀결되었다」고 적고 있다.
 
 
소련으로 넘어간 직후 김일성은 하바로프스크 근처에 있던「남야영」에서, 41년 3월12일 제1로군 병사 1백20여명으로 제1지대를 편성했다.
 
 
이후 김일성은 잠깐이지만 제1로군 정치위원 위증민(魏拯民)을 찾으라는 지시를 받고 다시 만주로 갔다.「김일성이 주보중.김책에게 보낸 서신」은 이때 작성된 것으로 만주의 유격대 활동상황과 자신의 활동경과를 보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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