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김일성 가짜설~진짜설]

●  김일성 진짜.?? 가짜설.?? 의 진실은.

 

예전에 나한테 위의 주제에 대해,

물어본적이 있었다.


내가 그나마 북한학을 전공해서 물어 봤을 것이다.

 

질문은 이랬다..

 

■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북쪽에는 김일성이 등장하잖아요..

 

그런데 그 때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김일성이 가짜라는 소문이 돌았다고하던데,,

 

그럼 질문 3가지 물었다.

 

※《첫째》  남침을 일으킨 김일성이

가짜인가요 ?진짜인가요?

 

《둘째》  만약 가짜라면 '진짜'

김일성이 어떤 사람이엇나요??

활동 같은 거...

 

《셋째》  만약 가짜라면 북한의

김일성은 어떤 의도로 진짜인 척을

햇을까요...

 

역사적 사실 위주로 적어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  내 답변은...

 

북한의 김일성은 항일투쟁하던

그 김일성인가?



서론


1989년 8월 광복회와 한국일보사가

공동주최한 ‘광복 44주년 국제학술회의’에

서는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 진위’ 문제를

두고 서대숙과 허동찬의 공개토론이

있었는데 서대숙은 “김일성이 중국과

한국의 공산주의자가 중심이 된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되어 1934~1941년

에 만주 일대의 일본군과 싸운 것은

사실” 이며 “ 그의 항일투쟁 기간이 짧고

다른 항일투사들에 비해 그리 위대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의 경력은 확실한 것이고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하였고


허동찬은 북한의 김일성은 다른 독립투사

김일성을 위장한 가짜라고 주장하며

“ 서교수는 근거없는 서대숙 설을 조작하여

혼란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학자”라고

반박하였다.


진짜, 가짜 공방이 소득없이 마무리 될 무렵

한 청중이 단상에 올라 “(김일성을 독립투사

라고 말하는) 빨갱이가 설치는 데에 무슨

통일이 있다는 거요!” 하며 소리를 치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이제 학계에서 ‘김일성 가짜설’은 사라졌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 문제는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논란거리인 듯 하다.

내 같은 학과 동기도 예전에 PC통신

토론방에서 ‘북한의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했다’ 는 발언을 했다가 어떤 분과 지루한

논쟁을 벌이며 빨갱이에 간첩이라는

소리까지 듣는걸 옆에서 지켜 본게 기억난다..


우리 나이를 전후한 사람들을 ‘똘이장군

세대’라고 표현하는데 초등학교 시절 보았던

똘이장군 만화에는 공산당은 늑대와 여우로

그려졌고 김일성은 돼지가 변한 악마로

표현되었다.


연배가 위인 분들은 또 다른 반공교육으로

무장되었을 것이니 1989년 학술회에

소동을 벌인 청중이나 동창에게 간첩이라는

비난을 하신 분이나 당황 스럽고 흥분되기는

마찬가지 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하였다 라는 이 글이 김일성이 분단을 조장한 것과 6.25의 책임을 모면시켜 주는 글로

본다면 그 것은 큰 오해이다.


김일성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이후의 역사

에서 그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분단이 낳은 왜곡된

관념이 사실로 기록되어야 하는 역사마저

오염시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고  그저

우리 사회가 진실에 인색하지 않는

합리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는

어느분의 말을 인용하며 본론으로 들어

가고자 한다.



2. 김일성 가짜설의 시작



1945년 10월14일 평양에서는 40여만명이

집결한 군중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서

김일성이 최초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많은 군중들은 보천보전투

의 영웅 김일성에게서 백전노장의 중후한

모습을 기대하였으나 연설장의 그의 모습은

30살을 갓 넘은 젊은 청춘이였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중국인 요리점

종업원을 연상시키는 바짝 치켜올린

헤어스타일, 라이트급 권투선수를 연상시

키는 목 짧은 몸매는 수 많은 군중을 실망

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남한 사회에 김일성

가짜설이 등장하게 되는 시기는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 내용으로 좌우익의 대립이

표면화되고, 북한의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빼앗긴 대지주들이 월남하던 1946년 초

부터이다.



좌우익이 신탁통치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될
때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책임비서

김일성은 우익측의 주요 타겟이 되었으며

따라서 월남인사들의 증언에 힘입어 김일성

이 나이가 어리다는데 중점을 둔 김일성

가짜론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3. 가짜 김일성 연구와 비판



가짜 김일성 연구는 이명영과 허동찬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명영은 김일성이 3명

이 존재하였는데 1대 김일성은 동북항일

연군 소속으로 1937년 30대 중반의 나이로

독립운동에 투신하다가 전사하였으며

후계자인 2대 김일성이 뒤를 이어 활동하

다가 1944~45년경에 사망하였고 북한의

김일성은 그들의 명성을 이용하여 김일성

행세를 하였다는 것이다.



허동찬의 연구도 비슷하여 2명의 김일성 중

가짜인 김일성이 북한의 김일성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은 앞에

소개한 서대숙을 비롯 인정식, 일본학자

"와다 하루키"를 통해 이루어졌고 이재화나

세종연구소의 이종석 등의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성과로 인해 결국 유명무실해

졌다.



와다하루키와 이종석은 김일성이 주도한

"조국광복회"의 기간 조직이 붕괴되는

이른바 ‘혜산사건’을 다룬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편 [사상휘보]20호

[5]를 근거로 이명영이 주장하는 1대 김일성

이 현재 북한의 김일성과 동일인물임을

증명하였다.



이종석은 특히 김일성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독립군 대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젊은 김일성

만이 만주의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으며 계속되는 일제의 토벌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4. 각계의 증언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명영이나

허동찬의 연구가 정설화 되던 시기에

중앙정보부나 정부 고위관리들은 김일성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72년 중앙정보 부장이던 이후락은 남북

대화를 위해 평양에 방문한 자리에서

김일성의 항일투쟁에 대해 언급하였고 설사

이후락의 발언이 북한 방문중이라 정치적인

면이 강했다고 하더라도 김형욱의 고백은

그러한 의심의 여지도 없다고 느껴진다.

김형욱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 전직 대한민국 중앙정보 부장이었던 내가

이런 발언을 한다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로

서 받아 들여져야 한다…………. 나는 진실을

말한다면 해방 전에 25세 약관의 김일성이

항일 무장 게릴라전을 지휘하였고 한 때는

중국 공산당 만주지역의 동북항일군 소속

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 연안에서 항일운동

에 헌신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규모가 적기는 하였으나 그가 함남의

길주, 명천 등지의 남삼군에 상당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고 보천보전투를 지휘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출신인 양세봉의 오른손인
"김학규"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김학규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지금 북한의

괴수 김일성은 그의 원명이 김성주 인바,

그가 어렸을 때에 그의 집은 장백에 있었고

그의 부친은 우리 민족 진영의 일원이였다.

우리 정의부에서 학비를 공금으로 주어 길림

육문중학교 2학년까지 공부를 시켰는데,

그 후 그는 조선혁명군 제1중대 이종락 대장

아래 있다가 공산주의로 사상을 전환한

것이다.


1929년 내가 길림에 어떤 대표로 가서 있을

때에 그는 육문중학에서 공부하면서 길림에

있는 소년들을 몰아가지고 소년대를

조직하고 그가 대장으로 있으면서 나를

찾아다니던 것이 기억되며, 내가 참모장으

로서 1932년 여름 당취오군(唐聚五君)과

같이 통화(通化)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있을

때 그는 무송(撫松)으로부터 한국공산청년

수십 명을 데리고 중국인 유본초와 동행하여

통화성에 있는 양 사령관(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과 나를 찾아와, 자기네도

항일할 터이니 무기를 달라고 요구하던

생각이 난다” 고 말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의 김일성이 사후

양세봉에 대한 배려에서 알 수 있다.

김일성은 해방 직후 1946년 양세봉의 처

임재순과 큰 아들 의준을 평양으로

이주시키고 1961년에는 양세봉의 시신을

발굴하여 1986년 애국열사릉에

안장시켰다.



북한의 여러서적에서도 다른 민족주의자들

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양세봉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북한의 주요인물로 활동 중 연안파

숙청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중인 '이상조'는

김일성에 매우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나 김일성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있다.



이상조는 “ 오늘날 북조선 집권자 김일성은

1930년대 후반기에 ‘동북항일연군’에서

양정우, 왕덕태, 위증민 등의 지도 밑에

2군3사장으로(혹은 1로군 제6사장) 제1로군

제2방면 지휘관으로 활동하던 인물이며,

특히 보천보전투의 조직, 집행자라고 볼 수

있다. ‘항일연군’의 김일성과 오늘의 수령

김일성은 동일인인 것이다.



나는 오늘의 김일성을 가짜 김일성 이라고

주장하는 <김일성 열전>의 저자 이명영씨와

는 정반대 되는 입장에 서 있다” 고 밝히고

있다.



5. 결론



위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북한의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고 항일운동에 투신하였던 그

김일성임이 밝혀졌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김일성의 가짜설이 등장하게

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김일성의 항일 유격대는 평지에서 싸우는

정규군이 아니라 산악지대를 숨어다니는

게릴라 부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병력을 부풀린다던가 신출귀몰함을

선전해야만 했다.



또한 김일성은 일본이 거액의 상금을

걸어놓고도 잡지 못한 유일한 사람이였다.

따라서 못잡은 것의 변명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일본측에서도 김일성을 과대포장하였

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면서

김일성은 확대되어 왔으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범한 젊은이(?) 김일성은 가짜로

오인받게 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분단된 현실은 반공이데올로기를

구실삼아 가짜 김일성론에 날개를 달아주

었다.



그러나 역사는 진실로 씌여져야 한다.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버리거나 축소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위대한 김일성은

없었다고해서 항일투쟁을 하던 김일성이

가짜인 것도 아니다.



애초에 백마를 타고 흰수염을 휘날리며

항일투쟁을 하던 김일성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 미련한 기대가 북한의 김일성

을 가짜로 만들어 버렸다.



1930년대 후반 만주에서 활동한 항일단체

는 김일성 등이 활동한 "동북항일연군"이

유일하였다. 나뭇잎을 타고 압록강을

건너는 김일성 부대에 현혹되지도 말아야

겠지만 만주에서의 독립투쟁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역사문제연구소, 민족해방운동사



1937년 동북항일연군에 속한 김일성의

부대가 함남 갑산군 보천보를 공격한

전투로 일제의 군사시설, 경찰, 통신기관을

파괴하고 다수의 군수품을 탈취한 사건.



이러한 내용이 국내 신문에 보도되면서

김일성의 부대가 유명해 졌다고 한다.

보천보전투를 김일성이 지휘했다는 주장

역시 의견이 분분하다.



오영진, 미군정하의 북한-하나의 증언



이명영, 김일성열전



내용요약: 함남 국경지대 압록강 일대에

할거하고 있는 이른바 김일성 일파로

칭하는 무장단은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로서 김일성(金日成)을 사장,

위민생(중국인 위증민)을 정치위원으로

하는 조선인과 중국인 혼합의 무장단이며

김일성의 신원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본명은 김성주(金成柱), 당 29세,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 출신으로서

어렸을 때 실부모를 따라 간도방면으로

이주하여 이 지방에서 성인이 되어 무장단

에 투신한 조선인이라는 것이 가장

확실하며……. 이종석, 현대북한의

이해<역사비평사>에서 발췌



애초에 항일무장투쟁기의 만주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장군 김일성이 존재할 땅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종석, 현대북한의

이해 <역사비평사> 457p



김일성-이후락 평양밀담 전문, <월간중앙>

 1989년 3월호



박사월, 김형욱, <김형욱 회고록 2>

[문화광장] 1987년 262-263p



김학규(1900~1967) : 독립운동가.

삼원보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에서 활동하였으며 1931년

양세봉의 조선혁명군 참모를 역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은 중농의 민족주의

자로 북한이 그의 항일운동을 엄청나게

과대포장한 것이 문제기는 하나,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반일운동으로 복역한 기록이

일제자료에 나와있다.



양세봉(1896~1934): 독립운동가.

1919년부터 철산등지에서 무장독립투쟁에

투신하여 1920년 광복군 총영, 1923년

참의부에서 활동하였다.



1929년 삼부통합과정에서 국민부에

가담하여 국민부 군사조직인 조선혁명당

군사령부의 사령관이 되었다. 중국군과의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일본과의 계속되는

전투에서 '홍경성전투' , '노구대전투' ,

쾌대모자전투에 참전하여 연전연승을

거두었으나 1934년 일본밀정 박창해의

계략에 빠져 마적 두목 이동양 등 주구세력

에게 살해당하였다.



김학규, 백파자서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8년 598p,


신주백,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다

[바로잡아야할 우리역사 37장면]2권

<역사비평사> 217~218p 인용



장세윤, 인물로 보는 항일무장투쟁사 中

이청천과 양세봉에서 <역사비평사> 173p



이상조(1913~ ) 공산주의운동가. 조선의용

대 제1지대 정치지도원을 지냈으며 김두봉,

최창익의 화북조선독립동맹에 가담하여

조선의용군 제3지대 지대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 6.25 전쟁중 박헌영을 수행하여

북경을 방문하였다.



1953년 휴전회담 북한측 수석대표를

역임하였다. 1956년 소련 주재 북한대사를

지내던 중 "8월 종파사건"과 관련되어

숙청되자 귀국하지 않고 소련으로

망명하였다. 1989년 9월 남한을

방문하였다.

임은, 김일성정전 <옥천문화사>

1989년 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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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불가능해도 이론상으로는 가능

할것입니다.


 

만약에 북한이 생기지 않았다면 아마

김일성은 독립투사로

인정을 받아서 훈장을 받아을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 하지만..


이론상으로 가능 합니다.   



이상.. 

 




덧글

  • 진실은 2021/05/27 20:22 # 삭제 답글

    결국엔 If(만약으)로 김일성을 찬양하겠다는 거네?

    80년대 NL쪽에선 만약도 필요없었는데, 이젠 If 아니면 안되나 보구나.

    실제로 한민족을 불행에 빠트린 인물(혹은 그 후손)을 찬양하는 심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네.

    저게 친일파 빠는 거 보다 더 나쁜 지꺼리지.
  • 게으른 얼음여왕 2021/05/28 03:42 #

    무슨 뜻인지.?
  • 광주폭동론 2021/05/27 23:56 # 답글

    김일성의 항일 투쟁은 전두환처럼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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