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남침.? 북침.? 문ᆞ답집

●  1950년 6.25=한국전쟁=새벽04시=북한의 남침=폭풍

대개 많이 헷갈려하시는데, 《북에서 남한을 먼저 침략한것을, "남침" 이라하고 남한에서 먼저 북한을 침략한 경우를 "북침" 이라고 한다.

예전에 어떤책에서 보고 내용을 저장해 둔적이
있는데 (나는 특별하다 싶으면 저장해두는 습관이 있다.) 내용은 6.25전쟁 관련 '질문과 전문가의 답변식으로 된 글이 었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글을 올려 보겠다.


※  질문 :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가르쳐 주세요..(난 이걸보고 너무 황당해서 저장한것
같다.)

<질문 요는??> 이렇다.

 

안녕하세요 26살 군대 다녀온 청년입니다. 지금 이렇게 군대 다녀 왔어도 했갈리는게 하나있습니다. 다들 군대도 다녀 왔는데 그것도 모르냐고 할수 있겠지만 저는 주위 사람분들에게  여러가지를 많이 들어와서 의문점이 생겨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학교, 군대 에서는 당연히 남한이 침략 당했다해서 남침이라 배웠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6.25 참전 용사시고 아버지는 1980년도에 해안쪽에서 남한으로 내려오는 북괴군가 싸우다가 다치셔서 국가 유공자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말을 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국가 유공자시라 1년에 한번 유공자가 만나는 자리가 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가게되었는데요 저희 할아버지와 같이 싸우셧던 유공자 할아버지분들이 저에게 하시는 말이 6.25전쟁은 남한이 먼저 침략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시더군요...그래서 저는 거짓말 하시지 말라고했지만 예전에 1980년도에 우리나라 국회의원 한분이 연설에서 6.25전쟁은 북침이라고하는 영상을 보여주시더라구요.... 저는 그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아서 진짜 북침인지 남침인지 정확하게 알고싶습니다

 

ps..저희 가족을 빨갱이다. 북한 놈들이다. 머다 욕하진 마세요 신고하겠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대한민국의 한국민입니다.


◇  답변 : 《 정치,북한,외교 교수,학자,연구원분이 답변 했다.》

<답변 요는.??>  아래와 같다.


이게  아마도 정답이 될수 있을 겁니다.

1948년 8월15일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된 날 입니다.

물론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 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하고 '우리의 맹세'라는게 잇었습니다.

1.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다.

2.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

3.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를 휘날리고 남북 통일을 완수하자.

이 '우리의 맹세'가 1949년 문교부가 제정해서 국민학교(초등학교) 교과서 심지어는 만화 뒷장에도 이 맹세문이 적혀 있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모든책 뒷장에 적혀있던 글 입니다.

그리고 국민(초등)학생도 암기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북진통일 북진통일' 하면서 북한으로 진격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38선 접경인 개성지역에선 매일 이다시피 북한군과 교전이 일어났습니다.

송악산 육탄10용사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1949년 5월 3일 새벽 한국군의 전투력을 시험하기 위하여 개성의 송악산을 기습침공한 사건 입니다. 이렇게 양측은 서로 기습을 하고 소규모의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이때 양측의  준비과정은 이렇습니다. 우리남한은 이승만의 북진 구호 덕분에 오히려 미국의 반감을 산거 같습니다. 미국은 우리가 요구하는 중무기 즉 탱크나 전투기를 원조해주지 않았습니다. 중무기를 원조해주면 북침할까 두려웠던 겁니다. 2차대전이 끝난후라 미국은 전쟁이 일어나는걸 원치 않았던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남한은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헛소리만 떠든겁니다.

 

반면에 북한은 1946년 2월 이른바 '평양학원'을 세워 장교를 양성하였고, 1946년 8월에는 '보안간부 훈련대대부'를 창설함으로써 북한의 무력강화는 급속히 이루어졌습니다.

☆  당시의 남북 군사장비 비교표 입니다.

○  남북한의 군사장비 보유수

 

구 분
한 국 군
북 괴 군

곡 사 포 : 91문

자주포 및 각종 곡사포 : 728문

대전차포 : 140문

대전차포 : 550문

지상화력

박 격 포 : 960문

박격포 : 2,318문

장 갑 차 : 24대

장갑차 : 54대

전차 : 242대

해 군

전투함 및 소해정 : 28척

어뢰정 : 30척

수송선 및 기타 : 43척

수송선 및 기타 : ?

공 군

연락기 및 연습기 : 22대

전투기 폭격기 및 기타 : 211대

북한은 7개 보병사단, 1개 기갑사단, 수개의 특수 독립연대로 구성된 총병력 11만 1000명의 병력이였고 남한의 병력은 제1, 2, 3, 5, 6, 7, 8보병사단과 수도사단 등 8개 사단 10만명 규모였으며 탱크는 한대도 없었습니다 그나마도 3개 사단은 후방에 있었기때문에 전선 병력은 5개 사단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국군은 노동절(5월 1일), 국회의원 선거(5월 30일), 북한의 평화공세 등 일련의 주요사태를 전후하여 오랫동안 비상근무를 계속하여 왔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태세가 이완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북한의 평화공세에 대비하여 하달되었던 비상경계령이 6월 23일 24시를 기해 해제되어 병력의 1/3 이상이 외출 중인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안된 남한이 북한을 먼저 침공하였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런경우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부터 교전이 있었기에 이날도 북한은 새벽에 남한에 소규모 사격을 시작 합니다.그러자 남한의 초소 병들이 맞대응 사격  그리고 후퇴하는 북한군을 따라 월경 하자 기다렸던 북한군의 대규모 침략이 시작되었다. 이런 가정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우리 남한은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큰소리만 쳤고, 북한은 비밀리애 차곡차곡 침략준비를 한것 입니다.


●  전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 회고록

김일성의 남침계획에 반대했던 스탈린은 1950년 4월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때 입장을 바꿔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아래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했다. 키신저는 “최근 획득한 외교문서를 볼 때 스탈린 김일성의 남침 요청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은 당시 스파이망을 통해 "NSC 48/2 문서"를 입수해 볼 수 있었던 것이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면서 “이 문서는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 외곽에 두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었고, 특히 이 문서가 극비로 취급됐기 때문에 소련의 정보분석가들은 아주 신뢰할 만한 정보로 간주했다”고 진단했다.

NSC 48/2 문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모들이 입안해서 1949년 12월30일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승인한 국가안보정책 보고서로, “한국을 미국의 극동 방어선 외곽에 둔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얼마 후 1950년 1월 국무장관인 딘 애치슨이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재차 확인됐다.

 

◇ (스탈린,김일성 비밀대화록 발굴  특종:소련비밀문서)
 

한국전쟁과 관련, 러시아측에 보관돼 있는 방대한 양의 미공개 비밀문서가 최근 서울신문에 의해 입수돼 그동안 외부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6·25내막을 밝히는데 중요한 사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총9백50건, 3천여쪽에 달하는 이들 문서는 38도선에서 남북한간 잦은 충돌이 벌어진 47년초부터 전쟁을 거쳐 휴전협정체결에 이르기까지 평양·북경주재 옛소련대사관과 본국 사이에 오간 전문과 크렘린에서 이루어진 전쟁관련 회합의 기록문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김일성이 49년 3월5일 모스크바를 극비 방문했을 때 당시 스탈린수상과 나눈 대화록도 포함돼 있다.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6·25를 일으키기 2년여 전부터 남침개시를 스탈린·모택동에게 계속 요구했으며 반면 스탈린은 미국의 개입과 준비미비등을 이유로 막판까지 남침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단 전쟁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한 뒤에는 전쟁준비·작전수립등 전쟁의 전과정에 스탈린이 거의 전권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탈린은 특히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북한군에 불리하게 바뀐 뒤, 김일성·모택동이 요청한 휴전제의를 거듭 묵살, 전쟁의 피해를 배가시킨 장본인으로 드러났다.

스탈린은 6·25를 미국의 국력을 소진시킬 절호의 기회로 보고 무리하게 전쟁을 계속 끈 것으로 관련문서는 밝히고 있다.

 
 ○  스탈린.김일성 남침각서

 김일성과 박헌영이 1949년과 1950년 두 차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스탈린으로부터 남침에 대한 승인과 전쟁지원 확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은 한국군 수뇌부가 휴가나 휴일을 꿈꾸는 1950년6월25일 일요일 새벽에 감행된것 입니다.

이때 서명한 비밀각서가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 돼있습니다. 1996년 강릉 잠수함 사건때 유일하게 체포된 북한군 이광수는 북한의 가르침대로 한국전쟁은 북침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용산기념관의 비밀문서를 보고서야 북한이 남침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북한의 남침 - 이게 진실 입니다.


     이상..

 







덧글

  • 광주폭동론 2021/06/05 00:49 # 답글

    외침을 많이 받은 역사를 가진 한민족은 북침과 남침도 주어+동사의 구조로 파악하기 쉬워요. 당연히 북침은 북이 침공하였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죠.
    강정구 교수는 한국전쟁때 외국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10만 이내의 희생을 치르고 통일이 되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 rumic71 2021/06/05 03:48 #

    실제로 압록강 건넜으니 중공군만 아니면 통일했죠.
  • 광주폭동론 2021/06/05 05:11 #

    그건 미군의 점령이죠. 전쟁이 나자마자 괴뢰반동학살자 이승만은 군사주권을 미군에 바로 넘겨줬습니다.
  • 광주폭동론 2021/06/05 00:53 # 답글

    통일전쟁이 실패하고, 김일성이 지상낙원을 자처할만큼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 때, 이승만은 거지와 미군위안부가 우글대는 헬조선을 만들어 놨어요. 박정희가 비로소 민중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죠.
  • 냥이 2021/06/05 10:12 # 답글

    남침/북침으로 많은 사람들이 해깔려하는데 해결방법은 단순합니다. 줄임말을 쓰지 않고 '북한의 남한 침범' 혹은 ' 북한의 6.25 촉발 혹은 개전'으로 적으면 됩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