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1949년동안 북한이 중국을 지원한 내역 자료(서적)

●  1945~1949년 중국 공산당 지원 내역 담은 북한 서적.

 

 

◇  “장개석 군대와 싸우던 모택동에 무기 10만 정·탄약 지원. 밝혀진지 오래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우리는 해방 이후 중국인민과 군이 동북지방에서 불리한 형편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적극 지원하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건국의 첫걸음을 뗀 매우 어려운 때였지만 중국인민의 해방전쟁을 지원하는 것을 응당한 국제주의적 의무로 간주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였습니다-金日成(김일성)>

 


⊙ 1945년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까지 한·중·일 역사책에서 빠졌던
김일성 북한 정권의 중국공산당 지원 내역이 있다.



⊙ 일부 과장 있지만 중국 原典(원전)까지 인용해 가며 상당 부분 사실에 근거함.

 


⊙ 2차 핵실험 앞둔 2008년 12월 국제사회 압력 증가한 시점에 출간. 중국 정부에
‘우리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도왔다’ 과시 의도로 생각됨.

 

 

강인덕(康仁德·78) 전(前) 통일부 장관이 

<중국 동북해방전쟁을 도와>라는 북한 서적을 입수했다고 한다. 이 책은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발행한 것으로 돼있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이 국공(國共) 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을 어떻게 지원했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한 ‘김일성(金日成) 전기’이자 역사서다.

  
  강 전 장관은 “그동안 북한이 발간한 김일성 전기가 해방 이전의 항일혁명투쟁을 집중적으로 다룬 것과 달리, 이 책은 1945년 8·15 해방 전후부터 1950년 6·25전쟁 직전까지의 김일성 ‘업적’을 적어놓은 최초의 역사서이다”라고 평가했다.

 

 

이 책은 부록 8페이지(주요 연표 담음)를 포함해 모두 319페이지다. 두 명의 집필진과 세 명의 박사가 감수를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강인덕 전 장관은 책의 저자가 북한사회과학원 소속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책 표지를 넘기면 김일성, 김정일(金正日) 부자(父子)의 교시(敎示)가 나온다. 이들 부자의 교시는 모두 김일성이 중국 공산당 정부를 지원한 내용을 담고 있다. 김일성의 교시를 보자.

  

○  중국 지원 내용 담은 부자(父子)의 교시(敎示)

 

 

 

<우리는 해방 이후 중국인민과 군이 동북지방에서 불리한 형편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적극 지원하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건국의 첫걸음을 뗀 매우 어려운 때였지만 중국인민의 해방전쟁을 지원하는 것을 응당한 국제주의적 의무로 간주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였습니다.>

  
  ◇  김정일 교시도 아버지의 교시를 거든다.

  
  <수령님께서는 국제주의에 매우 충실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국제주의에 얼마나 충실하시였는가 하는 것은 항일혁명투쟁시기와 해방 직후에 중국혁명을 도와준 자료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책의 차례를 보면, 모두 8부분으로 첫 장에 해당하는 ‘국제주의적 의무로 여기시고’로 시작해, ‘국제주의전사들의 귀국’으로 본문을 끝내고, 맺음말과 부록을 달았다. ‘중국인민해방전쟁지원 주요년표와 지도’라는 제목을 단 부록에 따르면, 책은 1945년 8월 10일부터 1950년 5월 12일까지를 다루고 있다.

 

 

지난 삼청동 극동문제연구소에서 강인덕 전 장관과 극동문제연구소 윤홍석(尹洪錫·43) 박사에게 <중국 동북해방전쟁을 도와>에 관해 의견을 들었다. 강 전 장관과 윤 박사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 중국·일본·한국 자료와 대조하며 이 책을 분석했다.

  
  ―그동안 1945년부터 1950년 6·25전쟁까지 김일성의 행적이 기록되지 않았던 이유가 있습니까?

  
  “북한은 정권 수립 후 김일성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을 이용했습니다. 김일성의 연설이나 교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내용이 항일무장투쟁입니다. 이는 6·25를 전후해 경제·사회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통제하는 수단이었어요. 이러다 보니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 6·25 사이에 김일성과 중국 공산당 정부의 교류 내용을 담은 출판물이 거의 없었습니다.”
 

 

◇  개인숭배에 이용된 항일무장투쟁 경력

  
  해방 이후 1945년 9월 19일 소련군함을 타고 원산항으로 귀국한 김일성은 34세의 젊은 나이에 북한의 최고 실력자로 부상했다. 친소(親蘇) 정권 수립을 추진한 소련은 최고지도자로서의 위상과 권력기반 확보를 위해 김일성 개인숭배를 시도했다. 항일무장투쟁 경력을 강조함으로써 김일성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북한체제를 형성했다. 강 전 장관의 얘기다.

  
  “북한은 ‘김일성이 조직 영도한 항일무장투쟁이 첫 민족해방전쟁, 혁명전쟁이며, 조국해방의 최후 승리를 이룩한 역사적 대사변이다. 항일무장투쟁의 경험과 업적이 정권수립의 역사적 뿌리였다’고 주장해 왔어요. 1950년대 말 주체사상이 형성된 이후부터 항일무장투쟁을 정치 도구화하기 시작하였고, 1980년 김정일 후계체제가 공식화되는 시기에는 북한의 통치이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1949년부터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 관한 역사서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 출판물 대부분은 일본 패망 이전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에 관한 내용이었다. 국공내전 시기 중북 관계를 기록한 자료는 거의 출판하지 않았다. 그나마 해방 이후부터 북한정권 형성까지 김일성의 업적에 대해서는 <세기와 더불어> 8권(1998)과 <항일무장투쟁사> 10권(1983, 2002-2005 개정판)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부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강 전 장관은 “두 책의 내용은 김일성 우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사실의 왜곡을 넘어서 소설을 쓴 듯한 인상마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세기와 더불어>같은 경우는 의외로 그래도  제법 사실에 가깝게

썼다.

  
  ―<중국 동북해방전쟁을 도와>도 기존의 김일성 역사서처럼 상당한 왜곡이 있는 건 아닙니까.

 

 

 

“이 책은 기존 북한의 역사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객관성이 있다고 평가됩니다. 물론 기존에 발행된 책처럼 역사적 사실을 김일성의 교시와 함께 기술하여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형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북·중 관계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항일무장투쟁에 관한 기존 출판물에 비해 객관성을 띠지 않을 수 없었겠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관한 내용을 다루면서, 눈에 띄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강인덕 전 장관과 동석한 극동문제연구소 윤홍석 박사도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서는, 과거 출판된 북한의 역사서에 비해 중국문헌이나 연변에서 출판한 조선어 자료를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인적 교류와 지원 및 물적 지원 등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부분이 여럿 있습니다.”

  
  강인덕 전 장관과 윤홍석 박사는 책의 본문 가운데 3장에 해당하는 ‘국가적 후방의 역할’이라는 부분은 처음 공개된 것이며 각종 통계와 인용 서류를 볼 때 사실에 가깝다고 했다.

  
  이 책 3장 격인 ‘필요한 무기도 서슴없이’에 따르면 김일성은 1945년 모택동(마오쩌둥)의 지시로 북한을 방문한 진운의 요청을 듣고 무기를 중국 공산당에 제공한 것으로 돼 있다. 책에는 10만 정의 무기와 탄약을 공급했다고 나온다. 또 김일성은 중국에 광목을 보내기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북한 전역에서 면직물을 징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일성은 당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황해도, 평안북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에게 보유하고 있는 모든 광목을 수입해 평양으로 수송할 것’을 지시했다.

  
  강 전 장관은 “책에는 당시 북한 전기(電氣)를 중국에 보낸 것으로 돼 있다”며 “전기가 없어 중국이나 한국에 전기를 요청하는 요새 상황과 정반대인 셈”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3장, 4장, 5장 일부, 8장 등에서 국공내전 당시 북한의 중국공산당에 대한 군사적 지원, 양측간 인사교류, 인적·물적 지원의 세부사항, 국공내전 종료 이후 조선인 병사의 귀국과 6·25전쟁 참가 등에 대해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이 부분은 북한의 중국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최초의 자료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전무한 실정에서 이 책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   김일성의 상관이었던 

"주보중(저우바우중)"을 부하처럼 기술

 

 

 

하지만 이 책에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강 전 장관은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조선족 지원군의 국공내전 참전 내용은 사실을 확대해서 조금 어느정도는 재구성한 부분이 있을거라고 추측 되기도 한다.”

  
  ―김일성이 동북지방에 파견했다고 하는 ‘조선인민해방군’에 대한 내용이 책에 나옵니다. 이는 역사적인 사실과 다르지 않습니까.

  
  “해방 전 김일성이 참여했던 중국공산당 영도하의 "동북항일연군"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조작했다고 과거 같은 경우라면 거짓이라고 평할수도 있으나 새로운 사료들이 발굴되면서 당시 국경지대나 조선근방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동북지방에는 김일성이 참여하여 항일빨치산 활동을 전개한 '동북항일연군'을 유일한 대일 무장투쟁조직으로 조작하였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사실 1936년 이후로는 '오직 김일성이 속한 "동북항일연군"만이 존재 했습니다.


그리고 동북항일연군은 1939년 일제가 조직한 7만5000명 규모의 대규모 토벌대에 의해 급격히 와해되었고, 이후 김일성은 1940년 10월 소련 연해주로 들어가 88여단에 합류했어요.”


  
  ―소련군 소속이었던 88여단의 단장이 주보중 아닙니까? 그런데 책에 보면, 주보중이 김일성에게 부탁하러 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게다가 마치 주보중이 김일성보다 직위가 낮은 사람으로 그려지는데요.

  
  “주보중의 경우 만주에서는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 사령관이었고 연해주에서는 88여단장이었어요. 이때 김일성은 주보중과 함께 활동했고, 주보중이 김일성의 상관이었죠. 나이를 보아도

주보중은 (1902년생이고)

김일성은(1912년생으로) 김일성이 주보중보다 10살이 더 어린 나이 였죠.


이러한 주보중과 김일성의 상하관계는 1945년 9월 김일성이 원산항으로 입항하기 직전까지 지속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김일성이 주보중의 상관인 듯이 간접적으로 기술하는 부분도 있고요. 이는 주보중 부하였던 조선족 "강건"을 일관되게 ‘동지’라고 호칭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이러니하죠. 


다만, 국공내전 기간 동안 주보중이 김일성에게 여러 가지 부탁을 하기 위해 찾아오거나 사람을 보냈다는 건 사실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택동이 김일성과 친한 주보중에게 부탁을 했고

실제 북한으로 가서 도움을 부탁한 사람은 주보중의 명으로 주보중의 부인이 직접갔습니다. 주보중의 부인은 김일성,김정숙과도 많이 친했죠.   이 사실들은 1991년에 출판된 "주보중의 항일유격일기" 에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또한  책의 후반부에 따르면, 1946년 6월 29일 3차 국공내전 이후 중국공산당의 공세가 본격화되면서 전개된 전투에서 ‘조선족 부대’가 승리를 주도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아울러 ‘조선족부대’의 활동이 김일성의 교시나 명령에 의해 활동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 전 장관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장된 부분’ 일거라고 말했다.

 

 

책에서는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한 ‘결정적’ 요인이 김일성이 조선족 부대를 파견해 중국공산당을 지원한 덕분이라는 입장이에요. 하지만 이는 과장된 얘기죠. 당시 김일성은 조선족 부대를 직접 지휘할 입장이 아니었고 조선족 부대는 중국 공산당 군대 지휘하에 있었어요.”


  
  ―중국 인민해방군사에 당시 상황이 기술돼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조선족 부대 문제를 과장한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 조선족 부대 문제에 대해 북한 측이 전적으로 왜곡한 건 아니에요. 이 책의 8장에 해당하는 마지막 부분이 ‘국제주의전사들의 귀국’이에요. 국제주의전사들이 바로 조선족 부대원들입니다. 당시 국공내전에 모두 12만명의 조선족이 참가했어요. 전쟁이 끝나고 1950년 4월까지 살아남은 조선족 부대원 가운데 약 4만명이 북한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들의 상당수가 몇 개월 후에 6·25 전쟁에 참여해요. 


이를 근거로 북한은 김일성이 조선족 부대를 지휘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김일성이 후방에서 계속 이들과 연락을 하고 이들에 대해 조언을 한 정황은 있습니다.”

  
 
 ◇   “국공내전 지원한 김일성 가계 우상화 통해 3대 세습 정당화할 수도”

  
  ―북한 정부가 이제 와서 국공내전을 도운 책을 출판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 책이 나온 시기를 보면, 책을 출판한 목적을 일단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문은 2008년 11월에 썼고, 책은 12월에 출판했습니다. 2008년은 북한 정권 입장에서 새로운 고난이 시작된 해입니다. 우선 지난 10년간의 한국 좌파 정권이 무너지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지난 10년간의 북한 퍼주기를 중단하고 핵개발 문제에 대해 강경한 정권 아닙니까. 10년 동안 좌파 정권과 이에 동조하는 시민단체. 20~40대 일부 종북주의자들의 지원으로 먹고살다가 순식간에 어려워졌습니다. 게다가 김정일 건강이 악화돼 정권의 기반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이 때문에 이를 더 악물고 핵에 매달려서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했잖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지원은 유일한 생존의 끈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내부나 중국인민들 사이에서도 반(反)북조선 분위기가 감지됐던 거죠. 현재는 중국의 나이 든 지도자들이나 북한을 혈맹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잖습니까. 


따라서 과거 북조선은 아직 정부가 완전치 않았을 때도 중국공산당을 지원했다는 걸 강조한 거죠. 책 곳곳에 국제주의적 의무를 다했다는 걸 강조한 건 이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너희만 ‘항미원조’(抗美援朝·6·25 전쟁에 중국이 참전한 것)했냐? 우리도 너희 도왔다” 이런 의미인가요.

  
  “그렇게 봐야죠. 책 맨 앞 부분에 나와 있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교시를 보면 북한의 의도가 눈에 뻔하잖습니까. 중국의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고조되는 반북조선 분위기를 어떻게든 누그러뜨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 공산당 내부를 움직여야 합니다. 아마 이 책을 발행한 후, 중국 사회과학원이나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을 통해 중국공산당 내부에 배포가 됐을 겁니다. 


중국의 일반 시민들은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영도에 따릅니다. 만약 ‘우리가 왜 북조선을 돕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오면, 이 책에 나와 있는 김일성의 각종 지원내용을 요약해 학습시키면 잠잠해지죠. ‘1946년부터 4년 동안 북조선의 지원이 없었으면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엄포 놓으면 꼼짝 못하는 것 아니겠어요.”

  
  윤홍석 박사는 “책의 후반부에 갈수록 취재를 제대로 못해서 인용 자료가 줄어드는 등 급히 책을 냈던 흔적이 있다”며 “어떡하든 2008년 내로 책을 발행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2009년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에 맞춰 책을 발행해 2009년 새해에는 중국 요로에 책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서둘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내부를 겨냥한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탈북자나 북한 정권 측 인사들을 직·간접적으로 접촉해 보면, 북한 사람들도 중국에 대해 불만이 많아요. ‘같은 사회주의 국가끼리 너무 잰다’거나 ‘중국에 너무 기대서 중국이 우리를 무시한다. 자존심 상한다’는 반응이죠. 이 책은 이런 북한 주민들의 반응도 누그러뜨릴 수 있죠. ‘우리도 과거 어려울 때 중국을 도와줬다. 그러니 중국에 당당하게 지원을 요청할 자격이 있다’고 다독이는 겁니다.”

  
  윤홍석 박사는 “향후 나올 김정일 교시를 눈여겨봐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기존 출판물과 달리 김정일과 연계된 내용이 한 곳밖에 없습니다. 1970년대 이후 발간된 북한의 역사서가 김정일과의 연계를 점차 확대해 왔어요. 이렇게 볼 때, 향후 김정일의 교시나 연설에도 국공내전에 대한 북한의 지원 사실에 대한 언급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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