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암살배후. "최용건"에 대한 고찰

김좌진의 암살 배후는 누구인가?

     

한인총연합회를 만든 김좌진은 1930년 1월 방아간에서 암살된다. 한인총연합회는 "박상실"이라고 주장하고 조선공산당 화요회 선전부장 양환준은 공도진(이복림)이었다고 증언한다.

 
당시 빨갱이들이 두개 이상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예사였고 동일인물로 추정되었다.

 
양환준에 따르면 이복림이 김좌진 암살후 빈현으로 도망가서 친구 허형식의 집에 숨는다.

 
허형식은 누구인가? 1929년 중공 빈현서기이자 조공 화요회 만주총국 군사부장인 최용건이
발굴한 인재이다.   

 
조공 화요회 무장대원 이복림이 허형식과 마찬가지로 군사부장 최용건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심증이 가능하다.

    
1930년 5월 허형식과 이복림은 하얼빈 농민 시위에 나란히 참가했다가 일본영사관 기물을

 
파괴하고 하얼빈 감옥에 갖히게 된다. 하얼빈 감옥에서 이복림과 허형식은 7살 연살인 김책을
만나게 되고 셋이서 도원결의 비슷한 것을 한다.  


감옥에서 나온 허형식과 김책은 최용건이 밭을 일군 빈현을 이어받아 서기와 행동대장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최용건이 일군 탕원현을 이어받아 서기와 행동대장으로 일한다.

    

이복림은 아현서기로 일하다 중공에서 내려준 낙하산. 조상지 밑에서 일하게 되는데

허형식과 김책 역시 나중에는 조상지 밑에서 3로군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3로군의 중심지역인 빈현,탕원현은 최용건이 1928~32년까지 밭을 일군 지역으로 빨갱이가 특히
많아 후일 중 국공산당 중심현위로 발전한다.  

 
최용건은 김좌진 암살 당시 북만주에서 중국공산당 조선인을 총괄하는 간부였고

 
조선공산당 화요회 무력을 담당하는 군사부장이었다. 암살자 이복림은 조선공산당 화요회의
무장대원이었다.

    
암살자 이복림이 친분있던 인물인 허형식은  최용건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요리봐도 저리봐도 김좌진 암살배후는 최용건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확실한 역사적 증거는 없어서 확신하기는 이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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