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그들이 자랑하는 만주항일투쟁..05편

05편..               시리즈




***  중공당의 신노선-코민테른 제7차 대회와 ‘8.1선언’





1935년 7월 25~8월 20일에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 제7차 대회가 열렸다. 이 대

회에서는 식민지·반식민지에서 반파쇼인민전선과 함께 소수민족문제에 주의를 기

울여야 한다는 방침이 제시되었다.


회에서 중화소비에트정부와 중공중앙당 명의로 「8.1선언」이 제출되었는데,

전중국의 국방통일정부 구성과 중국 내의 모든 피압박민족의 참가를 호소하는 내

용이었다. 8.1선언에서는 중국공산당의 항일노력과 함께 동북의 항일활동에 대해

서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항일을 위해서 당파를 초월하여 협력할 것을 호소하면서

중국내의 모든 피압박민족(몽고, 위구르, 조선, 티벳, 묘, 요, 여, 번 등)의 형제들

을 그 대상에 포함시켰다.



중국공산당은 8.1선언을 통해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각 당파

와 민족, 모든 계급·계층을 망라한 ‘항일연합군’을 조직할 것을 제기하였다. 이러

한 선언에 따라 중국공산당 만주조직은 1936년 1월부터 회의를 소집하고 각 항일

부대를 ‘동북항일연군’으로 개편, 확대하기로 결정하였다.


*  (참고) 
▲ 모스크바의 조종을 받는 프랑스 좌익을 비판   ‘인민전선’은 프랑스 노동계급이 반파시즘, 반제국주의, 반전주의를 목표로 한 통일전선운동에서 발전한 것이지만, 1935년 7차 코민테른 대회에서 불가리아 공산당 지도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제창한 후 일반화되었다. 식민지·반식민지에서는 인민전선보다는 반제반봉건통일전선이 더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대회에는 중공당 대표로 왕밍, 캉성(康生) 등이 참석하였고, 장정 도중이었던

중공당 중앙은 천윈(陣雲) 등을 파견했으나 대회가 폐막된 뒤에야 모스크바에 도

착할 수 있었다. 동만특위 서기 웨이쩡민도 민생단 문제에 대한 중앙지도부의 지

침을 받기 위해 이 대회에 파견되었으나 대회가 끝난 뒤에야 모스크바에 도착하였

다. 길동특위 서기 우핑(양쑹)은 대회가 끝난 뒤인 1935년 9월 하순부터 10월 초

순에 걸쳐 모스크바로 가서 코민테른 파견 대표 왕명과 강생, 중공대표로 뒤늦게

모스크바에 도착한 천윈 등과 함께 만주 상황을 논의하였고, 그러한 논의를 바탕

으로 1935년 11월 2일자로 코민테른 기관지에 양쑹이 쓴 「동북인민반일통일전선

을 논함」을 발표했다.


양쑹은 이 글에서 가능한 모든 반일세력을 집결시켜 반일

반만통일전선을 구축하고, 만주에서 조선인의 독자적인 독립투쟁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조중 연대를 실현할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모스크바 중앙의 지도로 좌익파벌주의의 극복에 진전이 있었다고 확인한 다

음, “중공중앙당은 이제 ‘중·한·몽·만 피압박민족의 통일전선’이라는 슬로건을 진

행시켜서 ‘중한민족은 굳게 연합하여 일본의 괴뢰만주국통치를 전복하고 간도 한

인민족자치구를 건립하자’는 구호를 내걸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였고, 그런 바

탕 위에서 “인민혁명군 제2군과 기타 반일유격대를 ‘중한 반일연합군’으로 개편하

여 한국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게 할 것, 중국공산당 조직의 강화와 아울러 ‘한국

민족혁명당’, ‘간도의 반일통일전선의 당’을 결성할 것” 등을 제안하였다.



양쑹의 글은 중공중앙의 신방침인 ‘8.1선언’을 한걸음 더 진전시켜 동북지역에서

반일통일전선과 함께 조중민족의 항일연합군을 조직하고, 조선민족의 통일전선적

당조직을 건설할 것을 제시하였다.


이는 동북지역 항일운동에 대한 중대한 문제제기가 아닐 수 없었는데,사실상 지금

까지 극좌적으로 진행된 반민생단 투쟁을 끝내고 조선인의 독자적인 항일 활동과

독립투쟁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핑은 길동특위 서기로 활동하던 1935년 1월 북만주 영안 동남산 저바오중

의 유격근거지에서 10여일 동안 머물면서 김일성으로부터 동만지역 민생단 사건

의 실상을 상세히 듣고, 동만특위 책임자 쫑지윈(鐘子雲)의 2차에 걸친 보고서를

검토한 뒤 “쫑지윈의 조선인 7, 8할이 민생단이라는 주장은 지나치다”고 비판하면

서 “재만 조선인의 절박한 요구인 간도 조선인의 자치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등 위의 글과 유사한 내용을 담은 ‘동만특위에 보내는 편지’를 보낸 바 있었다.


이는 극좌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동만의 민생단 광풍에 제동을 거는 것이었고, 이

러한 문제의식을 중공당의 ‘8.1선언’에 맞게 정리하여 코민테른 기관지에 발표하

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        0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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