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02편작).박헌영 간첩설 02편. 마지막편

02편. 마지막편



그 후 6.25까지 1년 10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에 남한 내의 남로당 조직은 궤멸의 길을 걷는다. 조직
내에 경찰의 프락치들이 깊숙이 침투했고 급기야는 박헌영의 월북 후에 지하운동을 지도해 오던 김삼룡과 이주하 마저 김삼룡의 비서였던 안영달의밀고로 체포된다.


남로당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검거되는 바람에 졸지에 남한 내 남로당 최고위직에 오른 박갑동은 그야말로 숨만 겨우 쉬는 처지에 있었던 남로당 조직원들의 한심한 상황을 증언(소설가 이병주 선생님, 소설 [남로당]. 이 괴작을 이병주전집에서 누락한한길사는 반성하라!!!). 그러나 안전한 북한에 있던 박헌영은 남침을 하기만 하면 자신을 따르는 남로당원들이 봉기해서 삽시간에 '남조선 해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구라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김일성과 함께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남침지원을 요청하며 그런 약팔기를 계속하고 있었다.결국 소련, 중국, 북한의 지도부는 남침을 감행하겠다는 파국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여기에는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뿐만 아니라 박헌영의 공명심 또한 크게 작용했으니 그는 김일성과 함께 동족상잔의 범죄를 일으켰던 민족 앞에 크나큰 범죄를 저지른 대죄인이라 할만 하다.


6.25가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했고 서울이 불과
3일 만에 함락되었으나 박헌영이 호언장담했던 백만 남로당원들의 봉기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좌경 맹동주의, 민중의 절실한 요구들에 실현가능한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고 오직 모스크바에 보여주기 위한 방식의 운동에만 매진한 것의 당연한귀결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3일을지체한 것은 박헌영의 호언장담을 믿고 남로당원들의 봉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덕분에 미군이 개입할 수 있는 천금 같은 시간을 벌어
남한이 구출될 수 있었다고 한다.


남로당원들이야 박헌영의 삽질과 경찰의 효율적인 운용으로 박멸되었지만...

후에 박헌영은 서울 점령 후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타던차를 몰수해 타고 다니기까지 하며(이병철회장 증언) 잠시 반짝하는 듯 싶었으나 그의 호언장담들이 모두 공수표로 끝나고 전선이 낙동강에서교착상태에 빠졌다가 인천상륙작전을 거쳐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해 북진하는 지경에 이르자박헌영도 김일성과 함께 도주한다.

김일성과 박헌영,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일으킨 이 두 민족사의 전범죄자들이 국군과 유엔군에 쫓겨서 압록강변에서 처량하게 중공군이 그들을 구원해 주기를 이제나 저제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던 1950년 늦가을에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이들은 대판 싸웠다고 한다. 특히 김일성은 술에 취해 박헌영에게 시비를 걸며 남침하기만 하면 튀어나올 것이라던 남로당원들 어디 갔냐고 펄펄 뛰었다고 하며 이에 대해 박헌영은 정치적으로는 수상인 김일성이 최종 책임을 져야지 무슨 소리냐며 받아쳤다고 한다(박명림 교수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사실이라면 이 싸움은 박헌영의 비극적운명의 전주곡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김일성은 6.25 남침 실패의 책임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희생양을 찾고 있었고 객관적으로 보아서도 박헌영의 이 민족 대참사에서의책임은 작지 않았다.

박헌영도 자신에게 닥쳐 오는 먹구름을 감지하고있었고 실제로 박헌영은 남한으로 보낼 빨치산 요원들의 양성소인 강동정치학원생들과 그 교관들을 활용하여서 김일성에 대한 선제 쿠데타를 계획 중이었다가 김일성에게 발각되게 된다.

그러나 김일성이 누군가, 이미 군사경력으로는 박헌영 뺨을 치고도 남을, 무려 중국의 주덕으로부터조선을 해방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던 연안파 무정(아그네스 스메들리,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다])조차 숙청하였던 자로 모든 무력을 틀어쥐고 있었기에 박헌영과 그의 동지들인 남로당계의 이승엽, 이강국, 임화 등은 곧 굴비두루미처럼 줄줄이 꿰어서 잡혀 들어간다. ※ 《참조: 우선 남한의 이승만 늙은이도 민족의 죄를 면할수 없다. 북을 치겠다고 입으로 나불대면서 자극을 주면서 막상 자기들은 아무 준비도 없이 그 헤이함이 도를 넘었다. 이외 다를 것들도 많지만 여기선 줄이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처형전 최용건의 심문 끝에 박헌영 및 그 일파들은 미국의 첩자인걸 인정했다.
하지만 이는 고문등으로 허위 자백이었고 실은 김일성의 6.25실패 책임을 박헌영에게 뒤집어 쒸었다는게 여태까지 학설이었다.

하지만 몇년 전에 미국의 유효기간이 끝나면서 공개된 기밀문서에서 박헌영과 그 측근 일파들이 실제로 미국의 비밀문서 누출이나 중요사항등을 빼돌린것등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여태까지 김일성의숙청설은 360, 바뀌게 된이다

어쨋든 계속 이어서~~

이들에게 씌워진 죄목과 범죄사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미 제국주의자들의 고용간첩으로 공화국에 반역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현재는 팩트지만) 김일성이 박헌영과 그의 남로당계 인사들인 이승엽, 이강국,
임화 등에게 뒤집어 씌운, 미국을 위해 북한에서 세작(細作)(웃음) 노릇을 했다는 누명이 후덜덜한 것이 이 '간첩질'을 시작한 때가 무려 1930년대로 올라간다.

그러니까 그 이후의 남한에서의 박헌영과 그때 같이 재판받고 처형된 이승엽, 이강국, 임화 등의 모든 공산주의, 사회주의 관련 활동들은 깡그리 미국을 위한 간첩활동이라는 어마어마한 결론이 되는것이다ㄷㄷㄷ 북한 김일성의 이 아슷트랄;한 주장에 의하면 예를 들어 시인 겸 평론가인 임화의 시작 활동이나 이식문화론 같은 도발적 문제제기, 카프활동 같은 것들도 모두 미국 정부의 꼼꼼한;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이라니-_-;

박헌영은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어느 시기에는 우리나라의 공산주의 운동 자체였기 때문에, 그의 활동이 미국 첩보기관의 사주에 의한 것이란 얘기는해방 이후로만 잡아도 남한에서의 모든 공산당의활동들 즉 8월 테제, 인민공화국 선포, 신탁통치 찬성, 조선정판사 사건, 미소 공동위원회 지지, 국립서울대학교안 반대 투쟁, 10월 폭동, 단정 단선 반대 운동, 김달삼의 제주도 폭동, 14연대 반란 사건, 지리산에서의 빨치산 활동 등등이 모두 미국의 사주에 의한 미국 제국주의 고용간첩의 일이라는 말이 된다ㅜㅗㅜ

소설가 이병주 선생님이 당신의 소설 [산하]의 주인공 이종문을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김일성의 이러한 주장은 양날의 칼이다. 그의 "박헌영 일당이 미국 간첩"이라는 주장이 만약 사실이라면, 암만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지지하는 나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미국의 앞잡이로서, 미국 정부의 급여를 받는 공산당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박헌영 일당이야 김일성이 뒤집어 씌운 누명 말고도 씻을 수없이 지은 죄가 셀 수도 없으니 그렇다고 쳐도 해방공간에서 자신들의 절실한 생존을 위한 요구를 남로당이 마련한 틀과 공간에 담아 애타게 싸우다 총이나 몽둥이에 맞아 죽은 사람들은 그러면 도대체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들은 이제 모두 '미 제국주의자의 스파이'인 박헌영, 이승엽, 이강국, 임화의 손에 놀아난 것인가? 박정희의 형 박상희는 남로당의 대구 10월 폭동가담했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이제 그는 미제 간첩의 하수인이 된 것인가?

김일성이 박헌영/이승엽/이강국/임화 등 남로당계를 '미제의 고용 간첩'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누명을 뒤집어 씌워 처형한 '평양재판'이었지만 김일성이 북한에서 가진 권력과 그 뒷배를 봐주고 있던 소련과 중국 탓에 김일성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주장은 북한 정권에서의 공식적인 설명으로 자리잡았고, 심지어는 당시 남한의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에게까지 전달되어 남부군을 지휘하던 이현상마저 모든 권한을 박탈당하고 평당원으로 강등당했다(이태, [남부군]). 심지어는 1980년대 남한에서 생겨난 이른바 NL들조차 박헌영이 미제의 고용 간첩이라고 진지하게 믿고 있다는 얘기를 나는 직접 듣고 나서 완전히 어이가 상실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역사비평]에 실린, 세밀하게 평양재판기록을 검토해 그것이 조작된 혐의라는 것을 입증하고 김일성을 비판하는 논문을 읽었을 때 남한 진보세력에 남아있는 양심의 소리를 접한 것 같아 정말 뛸듯이 기뻤었다.

그런데 이병주 선생님 말씀대로 김일성이 평양재판의 범죄사실을 날조했다고 하더라도 이 역시 반도에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파산선고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의 동지를 적대국의 간첩으로 몰아 죽이는 끔찍한 체제라니 오싹하기 그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기록상 박헌영 등 남로당계들은 그들의 '죄상'을 모두 자백하였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저질러졌을 고문을 통한 자백 강요와 세뇌공작은 상상만 해도 식은 땀을 줄줄 흐르게 할 만한 일이다. 서울에서 마지막까지 남로당의 간판을 지킨 셈인 박갑동은 박헌영이 결코 자백하지 않았기에 그의 자백을 끌어내려고 김일성이 박헌영을 동굴 속에 가둬 놓고 맹수까지 풀어 놓는 바람에 "네 놈들이 그랬다면 그랬겠지"란 말들을 했을 뿐이라고 하나 이는 박헌영에 대한 최후의 남로당원 박갑동의 마지막 존경과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박헌영이 미 제국주의자의 고용간첩이든 아니든 이로써 한반도에서의 공산주의는 완전히 파산하고 말았다. 김일성이 그 후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를 계속 제거하고 독재체제를 굳힌 다음 세습체제까지 만들어 내 이제 북한이 3대 세습까지 가게 된 건 이미 김일성이 1950년대에 2인자 박헌영을 그의 손자 못지 않은 방식으로 숙청했을 때부터 예고되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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