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동북에서의 무력항쟁..01편 (시리즈)

01편.         (시리즈)





☆☆☆  동북항일연합군

 

 

 

●  만주지역 항일투쟁과 동북항일연군


 

 

 

**  국경을 맞댄 만주에서 벌어진 항일무장투쟁의 여파..


 

만주사변·중일전쟁을 거치면서 중국 관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대(군)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었다면,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동북항일연군"으로 대표되는 항일무장무대가 활동하고 있었다. 중국 충칭과 옌안은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에 조선인들이 그곳 소식을 전해듣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만주와 연해주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다가 그 지역의 정세는 바로 조선의 치안상황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등 국내 신문들에도 국경의 치안상황은 바로 보도되었고, 국경을 중심으로 한 만주 등지의 소식은 국내 민중의 입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1930년대 말부터 해방 전까지 국내에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바로 ‘김일성’(김성주)이었다.

 

변은진의 연구에 의하면 1930년대에 조선과 국경을 접한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김일성은 이 시기 청년학생들이 중심이 된 소규모 비밀결사에서는 거의 ‘신화적’ 존재였다.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인물들은 많았으나 그 가운데서도 유독 김일성의 이름이 두드러졌던 것은 무엇보다도 국경지대에서 직접 일본 군·경과 전투를 자주 벌여 이름이 신문에 자주 오르내렸던 영향이 컸다. 특히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 전투’ 소식이 알려진 이후 김일성이란 이름은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고, 그 때문에 일제 말기 김일성은 여운형과 함께 청년들에게 가장 관심을 끌었던 인물이 되었다.


20210503063326_pnezbiuz.jpg         **  왼쪽 파랑 영문주소를 클릭하면 관련 사진이 나온다.

▲ ‘김일성비단’의 월경 함경북도 삼장면 습격 소식(동아일보, 1940. 5. 18.). ‘보천보 습격사건’(1937.6.4.) 외에도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사이에 ’김일성부대‘가 국경을 넘어 들어와 일본군경과 전투를 벌인 사실들이 국내 언론에 자주 보도되었다.


 

지금은 김일성의 항일운동 사실을 부정하거나 ‘가짜 김일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김일성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없지 않다.

 

특히 한국전쟁이라는 예민한 주제 때문에 김일성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다루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학계에서는 항일무장투쟁과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동북항일연군의 활동과 관련해서 이견이 있는 부분들이 남아 있고 해석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역사적 해석을 두고 남북 사이에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부분은 남북이 공동 연구를 통해 논의를 진전시켜 가야 할 부분이다.

 

한국 사회에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해 오랫동안 금기시 되었다면, 반대로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빨치산 활동만을 이른바 유일한 ‘혁명전통’으로 보고 그 외의 국내외 사회주의 운동과 민족주의계열의 독립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않거나 극단적으로 폄하한 측면이 있었다.

 

 

아직도 북한의 공식 입장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출간되면서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이상...     다음편에서 계속~~^^





 







덧글

  • 엑셀리온 2021/07/31 21:04 # 답글

    김일성이가 얼마나 날렸든 뭘했든 그냥 븅신 같은, 정신상태가 썩어빠진 인간에 불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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