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동북에서의 무력항쟁..02편. (시리즈)

02편.





아직도 북한의 공식 입장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출간되면서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도 사실이다. 

 

김일성은 회고록을 통해 자신을 도와주었던 오동진, 양세봉, 손정도, 현익철 등 국민부 계열의 민족주의자들을 비롯해, 임시정부, 여운형의 건국동맹이나 이재유 등의 국내 사회주의 재건운동 등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210504190248_kagzyuax.jpg         왼쪽의 파란 글자 클릭하면 관련 사진이 나온다.


▲ 1920년대 만주에서 독립군 총영을 이끌며 무장투쟁을 벌였던 맹장 송암 오동진.

오동진은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과 ‘조선국민회’를 함께 한 동지였고, 길림시절 양세봉, 손정도 등과 함께 김일성의 중요한 후원자 중 한 사람이었다.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오동진, 손정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과거 종파단체로 규정해 거의 인정하지 않았던 한인사회당이나 상해파·이르쿠츠크파 등 초기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서도 그 역사성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1925년에 결성된 조선공산당과 그 후의 재건 활동에 대해서도 여전히 비판적인 관점을 취하지만 당 창건의 합법칙성을 그것대로 인정하고 있다.

 

자신과 대립하며 ‘종파주의’로 낙인찍혔던 인물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이지만 종파나 분파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아가 국내 공산주의 운동의 핵심이었던 경성콩그룹의 인물들인 김삼룡과 이현상이 김일성이 이끈 '조국광복회'의 국내 책임자였던 박달과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나 연계를 모색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반종파투쟁’ 과정에서 북한의 역사서에서 사실상 완전히 사라졌던 연안계열의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에 대해서도 일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

이처럼 김일성은 회고록을 통해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항일민족운동을 포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회고록이라는 형식을 빌린 것이기는 하지만 ‘수령’이 남기고 간 항일운동에 대한 포용적 시각이나 열린 관점을 북한의 공식 역사가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에서 항일투쟁에 대해 새롭게 정리할 수 있는 유연한 상황이 마련된 것은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상황과도 맞물려 중요한 의미가 있다. 


어찌 보면 김일성의 회고록은 “냉전해체 이후 위기 속에서 남긴 ‘마지막 유훈’”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동안 “‘주체사관’으로 인해 제약되었던 역사인식”을 김일성의 권위를 빌어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 책(『세기와 더불어』)은 북한이 향후 변화하는데 있어서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근거로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동북항일연군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해서는 김일성의 회고록과 북한의 공식 연구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도 적지 않은 연구 성과를 이루었다. 

 

여전히 남북 간에 간극은 존재하지만 역사적 사실의 규명이라는 차원에서는 상당한 접근이 이뤄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접근은 이제는 과거의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상...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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