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동북에서의 무력투쟁..04편. 시리즈

04편.





1926년 5월에는 국내 공산당의 해외 파견조직인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북만주 영

고탑에 조직되면서 만주지역 공산주의 운동을 체계적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조선공산

당의 승인을 위해 코민테른에 파견되었다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만주로 온 조봉암이

초대 책임비서, 최원택이 조직부장, 윤자영이 선전부장을 맡았으며, 당 외곽조직인 고려

공산청년회 책임자는 김동명이었다.



20210506155133_fhiktfxi.jpg       왼쪽의 파란 문자 클릭하면 관련 사진이 나옴

▲ ‘제1차 간도공산당 사건’(1927.10.)으로 체포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간부들. 조직부장 최원택(앞줄 오른쪽), 동만구역국

책임비서 안기성(앞줄 중앙), 동만 선전부장 현칠종(앞줄 왼쪽), 위원 이주화(뒷줄 좌), 김지종(뒷줄 우)(사진=길림신문)



 반면 중국공산당의 경우는 1927년 10월에야 ‘중국공산당 만주임시성위원

회’가 봉천(심양)에 조직될 정도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비해 상당히 늦었

다. 그해 가을 중공당 만주성위 산하로 ‘중공당 동변도 특별위원회’(동만특위)

를 조직하고, 1928년 2월에는 조선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용정에 중공당 용정

촌 지부가 조직되었다.

 

하지만 1920년대 만주지역 공산주의 운동은 조선인들이 주도했고, 특히 동만지역의 경우는 조선인들이 전체 주민의 80%를 넘을 정도로 다수였다. 그 때문에 중공


만주성위는 성립 초기부터 조선인 농민과의 연계 및 토지개혁, 조선공산당과의 조


직적 연대 강화 등을 주요 전술로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210506155338_pwiybkan.jpg           왼쪽의 파란 문자 클릭하면 관련 사진이 나옴


○  간도공산당 사건 재판 소식(동아일보,1928.11.25.)





그런데 1928년 12월 코민테른 제6회 대회에서 조선공산당의 승인이 취소(해소)되


면서 만주의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다양한 세력들이 공산당 재건운동


을 진행하였으나 일제의 탄압과 운동역량의 미숙 등으로 번번히 실패하면서 만주


공산주의자들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만주총국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으나 그 상


급조직인 조선공산당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코민테른 6회 대회에서는 조선공


산주의자들의 모든 분파조직을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들 속에서 새롭게 당을 건설


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지도조직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와 함께 코민테른과 중국공산당은 ‘일국일당원칙’ 내세우며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에게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중국혁명에 동참할 것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만주의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두고 많은 논의를 했으나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해산하고 중국공산당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부정할 경우 당조직 없이 활동하거나 조선 국내로 들어가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인 공산주의자의 중국공산당 입당은 단지 일국일당 원칙의 고수라는 측면 외에도 다른 측면에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가 만주에도 미치면서 농민의 삶과 생활조건이 파산 상태로 되면서 계급적·민족적 대립이 더욱 격화된 상황이었다.

 

중국인 지주와 조선인 소작 농민으로 상징되는 모순관계가 심화하고 있었지만 장쉐량(장학량)으로 대변되는 중국 군벌 체제하에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은 지도력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만주에서도 서울상해파, 화요파, ML파 등 파벌 대립을 계속하였고, 대중적 열기를 조직적으로 지도하지 못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표출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은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있고 투쟁 경험이 있으며 동만지역의 경우처럼 조선인 대중과 밀접한 연계를 갖고 있는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을 중국공산당에 끌어들여 투쟁 역량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었다. 1931년 9.18만주사변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인 1927년 12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만주 목전공작계획 결의안」을 통해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에 조선인 농민과 연계 및 토지소유권 부여, 조선공산당 만주조직과의 연대 강화 등을 지시함으로써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을 포섭할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제의 만주침략을 목전에 두고 있고 농민을 비롯한 대중들의 투쟁의지가 고조되고 있던 1930년부터 중공당 만주성위는 조중 양민족의 공동투쟁과 일국일당원칙을 내세워 조선공산당 만주지부 조직과 그 구성원들을 본격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때 중공당은 ‘간도 5.30폭동’과 같은 대중봉기 전술을 구사해 조선인들의 충성도를 확인하고자 했고, 이런 과정을 거쳐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이 중공당에 가입하면서 중공당 만주성위의 세력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상...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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