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전선시찰
미제9군단에서의 3개월도 잠시 동안이었다. 인상깊은 일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미 대통령 당선자 아이젠하워가 수도사단의 전방고지에 왔을 때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1952년 12월 4일의 일이다.
당시 11월 4일에 실시된 미국 제34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 휴전’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아이젠하워 공화당 후보는 민주당 스티븐슨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었다.
아이젠하워 후보는 정치가이기 보다는 제2차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의 이미지가 훨씬 강렬했다. ‘아이크’로 애칭되는 미육군 장성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아이크가 지니는 군인상은 항상 승리감과 결부되었다.
그런만큼, 아이크의 당선은 한국전선에 새로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특히 클라크 장군이하 UN군 수뇌들은 고무적인 인상을 받았다. 그 영향은 한국전선에도 미쳤다. 제8군사령관 밴프리트 장군, 제9군단장 제킨스 장군과 여러 군단장들은 휴전회담의 답보상태가 시원하게 풀리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정장군, 공산군 상대의 협상은 말만 주고받는 테이블보다도 힘으로 몰아 붙이는 것이 유일한 최선책임을 보여주게 될 것 같습니다”
제킨스 장군은 이렇게까지 희망적이었다.
우리 국군의 고위 수뇌는 물론, 리승만대통령과 정부 당국도 ‘휴전결사반대’의 범국민궐기가 열매 맺을 것으로 기대를 걸었다.
그런만큼, 11월 21일 아이크의 내한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국군 전 사단에 긴급훈령이 하달되었다. 아이크의 시찰을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는 요지였다. 미군도 준비를 서둘렀다.
작전제한을 풀어 주기만 하면, 언제나 중공군을 몰아 붙일 수가 있다는 대세를 멋지게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나에게 비밀이 없는 제킨스 장군은 저녘식사를 함께 하면서 아주 고무적인 사실을 알려 주었다.
트르먼 행정부에 의하여 봉쇄당했던 맥아더 전략이 아이크 당선으로 빛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UN군 총사령관 클라크 장군이 대규모 공세작전을 계획한바 있다고 한다. 휴전회담이 포로문제로 결렬된 10월 11일 이전의 일이다.
클라크 장군은 본시 ‘힘’이 아니고서는 전쟁해결의 길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내밀히 대규모 공세작전을 계획하여, 미제8군 사령관 벤프리트 장군, 미극동 공군사령관 웨일런드 장군, 미국동해군 사령관 블리스코 장군의 동의를 얻고 있었다.
3단계에 걸친 계획이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남만주까지도 폭격한다고 계획되었다. 맥아더 전략의 소생이랄 수도 있었다. UN군 휘하의 고위 수뇌들은 이 전면공세계획을 전적으로 지지했다크라크 장군은 자신을 가지고, 미육군참모총장 콜린스 장군에게 이 작전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트르먼 행정부 밑의 워싱턴으로 부터는 아무런 회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크 당선으로 일은 잘 풀릴 것이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아이크는 전쟁의 승리와 패배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체험한 역전의 최고 지휘관이였으니까요”
재킨스 장군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아이크는 12월 2일 서울에 도착했다. 수행원은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윌슨, 미합참의장, 미태평양함대 사령관, 미공군 전략폭격대 사령관 등 18명이었다.
전선시찰은 4일로 통보되었다. 시찰부대는 미제3사단으로 예정되었다. 아이크의 아들 죤 아이젠하워 소령이 대대장으로 있는 사단이었다. 아이크가 아들이 근무하는 사단을 보고싶어하는 심정은 훈훈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아이크는 한국군 사단도 보고 싶어 했다. 제킨스 장군과 나는 군단 휘하의 제2사단이나 3사단이 선정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통보된 사단은 송요찬장군의 수도사단이었다.
수도사단은 이때 수도 고지전투와 지형능선 전투에서 용맹을 떨치고 미제1군단에 배속되어 있었다. 사단장 송장군은 미군 장성들간에는 ‘타이거 송’으로 통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장군으로 정평받고 있는 터였다.
12월 4일 쾌청했으나 영하10도를 밑도는 강추위였다. 아이크는 리승만 대통령과 함께 두툼한 야전파카 차림으로 도착했다. 미제9군단의 사단장급 장성들이 영접했다. 군단장 제킨스 장군이 부군단장인 나부터 소개해 나갔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장군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아이크는 그 유명한 ‘백만불짜리의 미소’를 잊지않고 있었다. 그러나 망원경을 눈에 대고, 고지전방의 적진을 묵묵히 빠라보는 옆얼굴은 엄숙하기만 했다. 고지에서 바라보는 적진은 온통 흰눈에 덮여 있었다. ‘철의 삼각지대’와 금성 사이의 험한 고지군이였다. 총소리 하나 울리지 않앗다.
“조용하군요, 장균”
아이크가 제킨스 장군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나, 한 번 붙으면 용광로가 되는 격전장입니다. 각하”
군단장이 적정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장군, 이렇게 실제로 와보니 휴전이 쉽지 않은 것을 실감하게 되는군요”
나는 귀를 세웠다.
“그렇습니다. 공산군이 버티는 배짱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제킨스 장군의 대답이었다.
“한국군 지휘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각하, 그 문제라면 여기 정장군에게 직접 들어보시지요”
제킨스 장군이 나를 가르켰다.
“참 그렇군요”
아이크는 내게 몸을 돌려 물었다.
“알고 싶습니다. 휴전에 대한 한국군 지휘관들의 생각을”
“예, 반대입니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전체의 공통된 의견으로 봐도 무방합니까 ?”
“그렁습니다.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평소의 지론을 털어 놓기로 했다“
”계속하시지요, 장군“
”예, 불가피한 사정으로 휴전한다 해도 현쟁듸 전선에서는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
”휴전 후의 후유증 때문입니다. 지형적으로 아군이 불리합니다. 공산군은 지금 시간을 벌고있는 중입니다. 휴전에 대비해서 유리한 고지를 더 차지하려고 공격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징후가 보입니까 ?“
”공산군의 전통적인 수법입니다. 3년간 상대하면서 얻어낸 상식입니다.“
”그기에 대한 최선책은 뭣인가요 ?“
”아군이 선수를 쓰는 것입니다“
”먼저 공세를 취하자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휴전협상이 아주 깨져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한국군 지휘관들의 의견으로 알고 참고로 하겠습니다”
아이크는 곤혹스런 얼굴로 다시 적진을 한참 동안 바라 보았다.
그 7개월 반 후에 휴전협정은 기어이 체결되었다. 참고삼겼다던 나의 솔직한 의견이 이 협정의 어느 대목에 참고 되었는지 이제 끝 알지 못하고 있다.
다음편에서~
20.6.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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