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로서는 대단히 편리한 알리바이를 손에 넣은 셈입니다. 언론에서 북핵 문제에 왜 진전이 없느냐고 물으면 미국 정부 관계자는 그냥 '중국이 협조를 안 해서'라고 답변하면 만사 오케이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이 같은 태도를 취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런 프레임에 그대로 포섭되었습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 외교 정책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잘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근혜 정권에서 '중국 책임론'은 특히 도그마처럼 받아들여졌다. 청와대 참모진은 '중국 역할론'에 단단히 중독되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책임론'이라는 허상을 이용하기 위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망루 외교'를 펼쳐 한국의 보수 세력마저 당황케 했다.
천안문 망루에 선 박근혜 대통령은 이듬해에 (중국 견제 의도가 담긴) 사드 도입을 추진하는 극도로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 결과는 다들 아는 바다.
이명박 정부는 그래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시도했었다. 역대 대북 문제에서 가장 무능한 정권은 박근혜 정권이었다. '전략적 인내', '기다리기'를 넘어서 개성공단 폐쇄를 단행했다. 적극적 행동에 나섰다. 잘못된 정보, 잘못된 인식에 토대한 행동이 얼마나 문제 해결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였다.
북한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알고 있는 북한'만 중요했고 '있는 그대로의 북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남한은 해방 직후부터 현재까지 미국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달랐다. 중국과 구소련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했다. 북한의 생존 방식이었다. 사회주의 진영의 양대 축 중 한쪽에 경도될 경우 난감한 상황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조선노동당 관계자에게서 "세상 모든 나라 중에서 제일 의존하면 안 되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자주성'을 특별히 중시하는 북한이나, 다목적 포석으로 북한과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중국 역할론'은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 북한 인권 문제와 탈북자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
박 교수는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한 해석을 내놓는다.
1994년 7월 기자회견을 자청해 "북한이 현재 핵탄두 5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핵탄두 5개를 추가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주장한 강명도 사건을 예로 든다.(강명도는 자신을 북한 정무원 총리 강성산의 사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중에 드러난 것은 이 기자회견 자체가 청와대 지시로 급조됐다는 것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측은 "기자회견을 하라고 지시했고, 그 이유는 북핵 협상이 한국을 배제한 채 진행되는 데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2000년대 초반 탈북자 김운철이 북한 내 강제 수용소와 고문, 처형 등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증언했을 때, 전 세계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스스로 김운철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박충일이라는 전혀 다른 인물로 드러났다.1997년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돈벌이를 하다 다섯 번이나 중국 당국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됐다 탈북한 인물이었다.
최근 사례로는 신동혁이 있다. 그는 스스로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난 탈북자라고 주장했고, <14호 수용소 탈출>이라는 책을 냈다. 오바마 행정부 국무장관이었던 존 케리가 "북한의 인권 탄압을 알리는 살아있는 표본"이라고 선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신동혁은 4호 수용소에서 태어났다고 했다가 후에 이를 번복하는 등 수차례 증언을 바꿨다. 신동혁의 지인인 정광일 씨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동혁의 말을 믿지 않았다. 14호에서의 탈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지적해도 다른 사람들은 시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더라. 동혁이는 국내에선 별 활동을 안 했다. 들통날까 봐 두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관련해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송지영 교수가 쓴 글을 인용했다.
"탈북자들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나 미국 의회, 서구 언론을 불문하고 질문은 한결같다.
'왜 북한을 떠났나? 그곳에서의 삶은 얼마나 끔찍했나?' 그들의 이야기가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국제적인 행사에 초청받는 일이 늘어날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북한 인권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국정원의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의 본질도 비슷하다. 국정원은 유우성 씨 동생에게 '남한에서 정착해 살 게 해 주겠다'는 것을 미끼로, 거짓 증언을 이끌어냈다. 국정원은 애초에 사실에 관심이 없었다. 스스로 상상해낸 북한의 모습에 사회적 약자인 북한 이탈 남매의 삶을 끼워 맞춰 넣었고, 겁박과 강요를 통해 원하는 말을 수집했을 뿐이었다.
북한의 인권 문제든, 간첩 조작이든 탈북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북한 인권 실태를 과장해야 하고, 간첩이 끊임없이 잡혀야, 지금 현재 우리의 시스템이 우위에 있으며, 간첩을 잡아들일 만큼 건재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는 탈북자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길 권한다.
"저는 탈북자 문제를 접근하는 기본 방식으로 두 가지 측면에 좀 더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이들이 한국에서 불법 체류를 하는 이주 노동자와 본질상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역지사지하는 마음입니다. 탈북자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의 흐름에 따라 저임금 지역에서 고임금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평범한 사람이다. 이들을 모두 '투사'로 만들어내 북한을 악마화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웜비어 사건'부터 '대북 퍼주기'의 허상까지, 당신이 궁금해하는 북한
박 교수는 북한 정치 체제와 사회 체제에 대한 실증적 지식을 토대로 민감한 사안을 거침없이 풀어 설명한다.
웜비어 사건 등 북한의 외국인(특히 미국인) 억류 문제를 비롯해, 숱한 오해를 낳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설명을 내놓는다. 북한 비핵화, 남북 경협, 북미 관계, 북일 관계 등을 조망하고, 전망까지 제시한다. 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다.
.이 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과거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4월27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특별히 눈치채지 못한 의외의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비핵화가 남북이 아니라 북·미 간의 문제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비핵화가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북·미 간 문제라고 얘기하면 친북, 종북, 북한 대변인 소리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였다는 점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 인식은 서서히 바뀌어 간다. 이 교수가 지적한 것과 함께, '북한에 관한 우리 안의 허상'을 깨는 것은 남북 평화 체제로 가는 첫 단계일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과 친해지기'에 대한 공포가 깨질 때, 남과 북은 비로소 공존할 수 있다. 그래야 공존의 다음 단계인 통일의 구체적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북한을 공부할 때다. 북한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허상을 통째로 깨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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