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다.?

●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다. 과연...


1994년 7월 8일 북녘의 통치자 김일성 주석이 죽었다. 다음날 *겨레신문 1면에 '김일성 주석 사망'이라는 대문짝만한 제목의 기사가 나가자 그 신문사에 항의 전화가 빗발쳤단다. "김일성이가 주석은 무슨 주석이냐"며 "그 따위로 신문 만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에 앞서 6월 15일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는데 김일성 주석이 이를 받아들여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7월 25일 평양을 방문하기로 확정되었을 때, 남쪽의 거의 모든 언론은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이 만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김영삼과 김일성' 또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란 균형 잡힌 표기는 찾기 어려웠다.

또한 국영 TV방송 뉴스진행자는 김일성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분단의 원흉'이요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를 우리가 처단하지 못하고 그냥 죽게 해서 원통하다고 했다. 며칠 뒤 이부영 국회의원은 임시국회에서, 그가 김영삼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죽은 터여서, 정부 측에 유감 표명이나 조의라도 전할 뜻이 없느냐고 물었다가 빨갱이로 매도되기도 했다.

김일성이 죽은 직후 남쪽의 반응이 이러했다면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어 믿기 어려운 얘기 한 가지만 소개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4년 8월 국회에 제출한 '
국가보안법 적용상 인권 실태'에 관한 보고서에 나오는 실화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70년 김 아무개씨는 자신의 집을 무너뜨리는 철거반원들에게 화가 나서 "김일성이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소리쳤다가 구속되었다. '이적행위'로 1심과 2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그가 죽은 지 4년 뒤인 1998년 8월 문규현 신부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방명록에 "김일성 주석의 영생과 조국통일 평화를 기원한다"는 글을 남겼다가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혐의'로 구속기소되었으나 나중에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2000년대 들어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고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되었다고 하지만 김일성에 대해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가 죽은 지 30여년이 지나고 냉전이 끝난 지 거의 30년이 흘렀어도, 그에 대한 반감이나 적대감 또는 원한이나 증오심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2000년 이후 북녘을 방문하는 남쪽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크게 늘고 있는데, 이들에게 그의 동상이나 그가 태어난 곳은 가급적 가지 말아야 할 장소요 그의 시신이 안치된 곳은 절대 방문하지 말아야 할 장소다.

생전에 좋은 사람 (의인, 義人) 없고 사후에 나쁜 사람 (악인, 惡人) 없다는 말처럼, 살아서 아무리 못된 짓을 저질렀어도 죽고 나면 그 허물이 덮어지는 게 보통인데, 그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여전히 원수일 뿐인 것이다.

도대체 김일성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일을 했기에, 그보다 나쁜 사람은 있을 수 없고, 그에겐 공식직함도 붙일 수 없으며, 죽은 것을 반기면서도 우리가 직접 죽이지 못해 원통하게 여기고, 명복을 빌기는커녕 조의 표명도 해서는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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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역사의 인물이 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원한과 증오의 감정을 뛰어넘어 조금 냉정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김일성을 평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가 '분단의 원흉'이나 '전쟁의 범죄자'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심하게 그리고 악의적으로 왜곡된 부분의 하나인 '김일성 가짜설'과 관련하여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분단과 전쟁에 앞서 해방 이전 그의 행적에 대해 알아보자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북녘 사회를 바로 알고 이해하기 위해 꼭 공부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꼽고 싶다. 김일성은 밉든 곱든 거의 반세기 동안 살아서뿐만 아니라 죽어서까지도 북녘을 통치해왔고, 주체사상은 좋든 나쁘든 북녘에서 헌법보다 중요한 "당과 국가 활동의 지도적 지침"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세우고 유지해온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어떻게 북녘을 바로 알 수 있으며 무슨 수로 화해협력을 통해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1. 김일성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어느 사람이든, 살아 있든 죽어 있든,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다를 수 있다.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 기준이나 시각에 따라 정반대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가 해방 전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했고 해방 후에는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18년이나 독재정치를 실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을 불러온 훌륭한 대통령이었다며 기념관을 짓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김일성에 대해서는 그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기에 앞서, 그가 진짜냐 가짜냐 하는 해괴한 논쟁이 오랫동안 벌어져왔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김일성이 진짜냐 가짜냐의 논쟁이라기보다는 그가 가짜라는 억지 주장이 일방적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다. 1930년대 일제의 식민통치 시절 만주벌판에서 백마를 타고 하룻밤에 수백리를 달리며 일본군을 무찌르던 김일성이라는 전설적인 명장이 있었는데, 1945년 소련군대위 출신의 김성주가 평양에 나타나 갑자기 김일성 장군으로 행세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학교교육과 언론을 통해 정설로 굳어져버린 것이다.

나는 1983년 대학교를 마칠 때까지 학교교육을 착실하게 받아들이느라 '가짜 김일성'에 대해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북녘 김일성이 진짜라는 주장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기에 앞에서 고백했듯이, 대학 2학년 때는 여고생 조카에게 "혹보영감 가짜 김일성을 때려잡자"는 내용의 웅변원고를 자신 있게 써주기도 했다.

그러다 1984년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우상과 혁명이란 제목의 김형욱 회고록을 통해 김일성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사실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박정희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으로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최장수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이,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때려잡았던 경력"이 있는 반면 김일성은 "항일 무장게릴라전을 지휘"하였다고 밝힌 대목을 읽고서다. 이에 관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알아서들 알아보기 바란다.

그 후 1991년 하와이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과정을 밟을 때 나를 몹시 아껴주던 마이클 하아스 (Michael Haas), 글렌 페이지 (Glenn Paige), 요한 갈퉁 (Johan Galtung) 교수들로부터 간략하게나마 김일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특히 페이지 교수는 정년퇴임하면서 김일성에 관한 영문 책을 수십 권이나 건네주었다.

그리고
'김일성 전문가'로 국내외에서 유명했던 서대숙 교수의 강의를 직접 들으며 김일성이 진짜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로 서대숙은 1988년 미국 콜럼비아대학에서 펴낸 KIM IL SUNG: The North Korean Leader 및 1989년 서울에서 이를 번역하여 펴낸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그리고 2000년 펴낸 현대 북한의 지도자 등의 책에서 김일성의 출생부터 어린 시절 및 항일무장투쟁 시절까지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김성주가 1920년대 후반 만주에서 중학교 다닐 때부터 공산주의운동을 하다 일제에 구속되어 1930년 풀려난 뒤 이름을 김일성으로 고치고 항일 게릴라활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는데, 1932년 유격대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무력투쟁을 펼쳐나갔다는 것이다.


이상..  다음편에서~
나는 1994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칠 때까지 미국정~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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