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직전 문서자료..(3)

03편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재 소련대사가 소련군 총참모부 부참모장에게 보낸 보고서, 



● 조선인민군의 전투행동 준비와 실행,



 
1950년 6월 26일

조선인민군의 군사행동의 준비와 진행 과정에 관해 보고합니다.



총참모부의 계획대로 인민군은 38선 지역에 6월 12일 집결을 시작하여 6월 23일 완료했다. 각 부대의 이동은 조직적이었고 의외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적의 정찰은 대략 각 부대의 이동을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각 부대의 계획 및 작전 개시시간은 모두 비밀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각 사단의 작전계획 제정과 지형정찰 과정에는 모두 소련 고문이 참가했다.


작전에 대한 모든 준비 조치는 이미 6월 24일에 완성되었다. 6월 24일, 이미 각 사단장에게는 ☆{《참조》공격 개시일 }

와 Ч체 ☆{《참조》공격 시간. }

의 명령이 내려졌다.


각 부대는 민족보위성의 정치명령을 낭독했는데, 그 중에는 남조선 군대가 38선을 침범하여 군사적 공격을 도발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조선인민군'의 반격에 관한 명령을 발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선인민군 장병은 드높은 열정으로 반격에 관한 명령을 청취했다.


각 부대는 6월 24일 24시에 공격개시선으로 진입했다. 


군사작전은 현지시간 4시 40분에 시작되었다. 공격전의 준비포 사격은 20~40분간 실시되었으며, 여기에는 조준사격과 10분간의 포격이 포함되었다. 


그 후 보병이 행동을 개시하여 신속히 공격대형으로 전개했다. 시작 3시간 후, 각 부대와 군단은 이미 전방으로 3~5km 진격했다.


인민군 부대의 공격은 완전히 적의 예상 밖이었다.


적(남한군)들은 옹진, 개성 그리고 서울 등의 여러 방면에서만 완강한 저항을 했을 뿐이었다. 


보다 조직적인 저항은 


첫째 날 12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전투 첫째 날 공격하여 점령한 도시는 옹진(옹진방면), 개성, 송우리(지도 1 :1,000,000, 1943년 총참모부 출판)였다.

춘천 방면으로 인민군 부대는 12km 진격했다.


동해안으로는 8km 나아갔다.



바로 첫째 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은 두 개의 상륙부대로 동해안 연안에 상륙했다. 


제1대 상륙부대는 강릉지역으로 2개 대대의 해군 상륙부대와 약 1,000명의 유격대원으로 구성되었고, 제2대 상륙부대는 울진지역으로 600명의 유격대원이었다.


상륙부대는 6월 25일 5시에 상륙했고,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유격대 상륙부대는 울진과 그 주위의 일부 마을을 점령했다.

상륙부대가 상륙하는 과정에서 인민군 군함과 남조선 군대의 함정 간에 전투가 발생했다. 전투 결과 남조선의 소해정 1척이 침몰되었고, 나머지 1척의 소해정은 파손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은 손실을 입지 않았다.


6월 26일 인민군 부대는 계속 공격하여 전투를 하면서 남조선 영토 종심으로 추진되었다.


6월 26일 하루에(우측에서 좌측으로) 옹진반도, 개성반도 ☆{ 《참조》) 개성을 잘못 쓴 것으로 보임. } 


를 철저히 소탕했으며, 제6사단은 해안 포구를 도하하여 김포비행장 방면의 주민 거주지를 점령했다.


서울 방면에서는 제1, 제4사단이 문산, 동두천 등을 점령했고, 제2사단은 도청 소재지인 춘천을 점령했다.


동해안 일대에서 부대의 진격은 계속되었다. 주문진도 이미 장악했다.


홍천 방면으로 이동한 제12사단은 송우리를 넘어 의정부 방면으로 공격하는 제3사단 및 기계화여단과는 하루 종일 연결이 되지 않았다.


◇  북반부에 대한 총결 (북한)=조선인민군


인민군의 작전행동 중에서 가장 부족한 문제점은 아래의 몇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1. 전투작전이 일단 개시되고 각 부대가 전방으로 진격하면서 상부에서 하부까지 각 참모부간 통신이 두절되었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바로 첫째 날에 어떤 사단과도 안정적인 교신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전투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군단 예하 각 부대의 지휘관들도 상급 참모부와의 통신 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대대장 이상의 지휘소는 상급 참모부의 동의도 거치지 않은 채 임의로 변경되었으며, 총참모부는 지금까지 동해안을 따라 작전 수행 중인 여단 및 제12사단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2. 조선인민군 지휘성원은 전투경험이 없어 소련 군사고문이 떠난 후 전투를 조직적으로 지휘하지 못하고, 화포와 탱크의 사용에 미숙하며, 또한 교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3. 다만 우리들의 군사고문은 조선인민군 각 작전부대의 높은 의욕과 제기된 과업을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열의에 주목하고 있다.


4. 군사작전의 개시와 관련하여 북조선 인민들의 정치적 분위기는 고양되어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대한 신뢰와 조선인민군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다.


6월 26일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명의로 조선 인민에게 호소하는 글에서.. 


복잡한 국내정세에 대해 언급하는 동시에 적을 궤멸시키고 조선을 통일하는 과업을 제시했다.


5. 조선인민군 사령부는 각 부대, 각 전투지휘기구와의 통신을 조직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 목적을 위해 인민군 지휘소는 철원지역으로 이동했다. 민족보위상, 총참모장과 총군사고문 및 일단의 군관들이 인민군 지휘소로 이동했다.


◇  남반부에 대한 총결  (남한)=국군


군사작전을 시작한 후 이틀간의 정황은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점을 보였다.


1. 적은 저항을 했으며 또한 전투가 진행되면서 남조선 영토 종심 방향으로 퇴각했지만 남조선 군대가 대거 항복을 한다거나 포로가 되는 상황은 눈에 띄지 않았다.


2. 남조선 괴뢰정권은 종심지역에서 부대 이송을 시작했고, 이것으로 인민군의 전진을 저지하려고 했다.


3. 인민군이 공격한 첫째 날, 남쪽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남조선 정권과 미국 대사가 직접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성명을 발표하여 남조선 국민들의 평정 유지를 호소했다. 


남조선군 참모부는 남조선군이 승리를 하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허위 보도를 발표했다.


슈티코프.


04편에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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