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랑의 회고..< 3 >편

《 3 》편


● 김일성의 첫 번째 실수는 '교육정책'


글을 쓴 성혜랑은 ​김일성의 첫 번째 실수는 이승만과 달리 전후 교육을 육성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하는 본서 258페이지의 내용이다.

북조선의 복구 건설은 대학생들에 의해서 수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라에서 금싸라기처럼 아끼는 미래의 역군 대학생을 이렇게 노예보다 혹사시키고 우리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신체가 발육하지못했고 젊음의 포부나 낭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역사 어느 시대 어느 종족이 이런 고역을 행복으로받아들이고 노동의 보람으로 자기를 희생한 실례가 있었을까. 소련의 공민 전쟁시기나 소독 전쟁 이후 소련의 공청원들이 집단적 노력으로 조국을 건설했다는 그것은 우리가 겪은 육체노동의 강도나조건에 비할 때 그래도 상식 내의 것이고 인간 생활의 범주 내에 속해 있었다.

힘들어도 힘이 안든 척 웃어야 하고 가혹한 육체노동의 고통을 축제와 같은 즐거운 기분으로 극복할것을 요구하는 그 어려운 혁명화는 인간성의 부정이며 유린이었다. 

남조선 대학생들이 1만 권의 책을 읽는다는 말을듣고 군사 파쇼 독재하에서도 그 청춘들에게는 이런 지적 자양이 허용되는데 인류의 이상국가라는이 나라는 우리에게 무슨 자양분을 제공하는가. 대학생을 이렇게 버럭(광석에서 금속을 빼고 버리는 돌)으로 만들면서 무슨 미래를 운운한단 말인가
싶었다.

4년제 대학을 나온 우리는 노력동원으로 대부분
수업시간을 떼우고 만 1년 8개월밖에 공부를 못했다. 이런 악순환은 우리세대에 그치지 않았다. 전후 40년 대학생들은 의무적인 노력동원 적위대 훈련으로 해마다 몇 달씩을 빼앗기고 그 결여를 보충할 기회 없이 사회로 나온 100만의 인텔리 대군이지닌 이 엄중한 골다공증은 40년간 서서히 이 나라가 기울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오늘 북조선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전쟁세대는 그 이후 대학을 나온 세대보다는 자질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제한적이기는 해도 그들은 적어도 사회주의 진영으로 열러 있던 환경에서 남의 문물을 접할 수 있었으며 개인숭배 일색화의 사상교육을 받기 전 세대이기 때문이다.

70세 안팎인 그들이 떠나면 남이 비난하는 말이겠지만 이른바 베토벤도 모르는 세대가 남게 된다. 북조선이 굶게 된 오늘을 극복한 다음에 닥칠 위험은문화의 낙후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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