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랑의 회고..4편

4편



■ 김일성의 두 번째 실수 '5.25 교시'


● 젊은 시절의 ​성혜림이 평양에서 직접 보고 느낀 5.25교시에 대한 기록이다.


<​본서 312 page>


북조선 사람들은 모두가 60년대까지는 살기 좋았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한다면 5.25교시 전까지는북조선은 그래도 사회주의 인민의 나라였다.

그러나 5.25교시 (67년 조선노동당 15차 전원회의에서 나움)를 계기로 계급투쟁과 프로독재의 강화, 수령 우상화의 심화, 인텔리 혁명화를 몰아치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극좌적인 바람이 불어닥쳤다.


5.25 교시 이후 전국적으로 실시된 도서정리 사업은 거의 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전국의 모든 가정, 모든 직장의 책 페이지가 일일이 검열되는 방대한 캠페인이 있었다. 이 지구상에 북조선만큼 철저하고 무지막지한 노력투하를 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북조선 땅이 아무리 좁고 인구가 유한하다지만 거기에 있는 모든 책의 페이지가 (같은 제목의 100권의 책이면 그 100권 모두) 검열대상이 된다면 그
페이지가 어느만큼이겠는가. 페이지에 있는 글 줄이 모두 검열대상이라고 쳐보라. 글자 하나하나가. 도서정리는 당에서 문제라고 제기하는(삭제대상)내용과 어투, 인명을 삭제하는 작업이다.


물론 제지공장으로 가야 할 책 명단을 따로 있고 '제한이용'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책에 대해서 말이다. 기준은 수령 우상화, 항일무장투쟁의 절대화, 계급혁명 즉 반수정주의, 반부르주아 문화였다. 이것에 저촉되는 모든 것을 먹으로 칠하거나 페이지를 뜯어내거나 종이딱지를 붙이는 작업이었다. 그 작업의 막대함은 둘째치고 내용의 규제가 문제다. 수령 우상화를 위해 역사를 뜯어 고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부드러운 문구까지 지웠다.


직장마다 제지공장으로 실려나가는 책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한마디로 그것은 거의 대부분이 양서였다. 남은 것은 체제와 수령 찬양의 정치서적, 그리고 수령님 노작과 교시집이었다.

전쟁 때 나는 미국 비행기가 손바닥만한 도시에 하루에 수백개의 폭탄을 던진 때도 이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공포를 느껴본 일이 없었다. 미국은
우리 적이었고 공산주의를 전멸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상 사회 건설을 표방하는 인민의 내 나라가 이 무슨 만행인가? 도대체 누가 이런짓을 생각해냈는가.

5.25 교시는 음악에서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외국 음악은 소련 노래까지도 금지되었으며 고전악보는 모두 불살라졌다. 과거의 석고 조각품은 미너스건 베토벤이건 모두 몽둥이로 깨버렸다. 서양화는 일체 찢어버렸다. 이 무렵 전후와 천리마 시대에 단단히 한 몫 하던 민족예술극장이 해산되고말았다.

반 수정주의라는 몽둥이는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닥치는 대로 휘둘러졌다. 외국기술 도입은 수정주의가 되고 선진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조차 비판을받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력갱생이라는 미명 하에반세기 전에 세상에 도입된 기술이 우리 나라에서는 창의에 의해 개발되어야 했고 인류가 달성한 기술문명의 토대 위에 쌓여나는 기술진보의 합리성이 부정되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가 그대로 사회풍조가 되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이론 봉쇄는 경제발전에 제동력이 되었다. 이 같은 선풍에 의해서 문화예술인, 과학자, 유학생이 대대적으로 축출되었다. 평양에는 촌뜨기만 남았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방불케 하는 반문화 혁명의 결과로 드디어 북조선은 무지의 왕국이 되었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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