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일본인 요리인의 수기..< 2 > 편

《 2 》편



※ 밤 연회에서 큰소리로 초밥 계속 주문한 남자


한편 노래방에는 이미 일본인 지배인과 마담, 그리고 일본인 호스티스 두명과 태국인 호스티스 일곱명이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중에 태국인 호스티스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나는 그들이 거의 납치되다시피 해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본에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갔더니, 놀랍게도 북조선이었다는 것이다. 계약금은 월 1,500달러이고, 몸을 팔아서 버는 돈은 모두 자기들 몫이 된다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돈이나 벌며 살아갈 거야!” 그들은 태국으로 돌아갈 것을 체념이라도 한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후 태국 호스티스들이 몸을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닛초 무역상사 회장이 평양으로 날아왔다. “종업원에게 몸을 팔라고 시키는 곳이라면나는 이제 절대로 종업원을 소개해주지 않겠다!”
회장의 항의에 호스티스들의 몸 파는 행위는 중지되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처음 두 달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 김정일 앞에서 초밥을 만들다

◇ 다랑어로 만든 초밥


1982년 10월 21일, 느닷없이 안산관 책임자로부터 “후지모토 씨, 20~30인분의 초밥 재료를 준비해놓으십시오”하는 말을 들었다. 얼마 후 안산관앞에 벤츠 세 대가 멈춰섰다. 우리를 데리러 온 차였다. 나 외에 일본 출신의 노래방 마담과 호스티스 두명, 그리고 태국인 호스티스 네 명도 함께 탔다.두 시간 반쯤 달렸을까, 도착한 곳은 해변에 위치한 5~6층 남짓 되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그곳이 ‘원산 초대소’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우리는 한 사람씩 방으로 안내되어 잠시 쉬고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초밥은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초밥 요리사는 밥짓는 것부터 재료 선정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그러자 통역을 맡은 '임상종'이 나서서 말렸다. “이곳에는 뛰어난 요리사가 많습니다. 당신이지시만 하면 모든 것이 준비될 테니 안심하고 쉬십시오.”

밤 10시쯤 되자 마침내 나를 데리러 사람이 왔다.조리실에는 임상종이 말한 대로 20명 정도 되는 요리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요리과장이란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보조 요리사를 다섯 명 붙여줄 테니뭐든지 시키십시오.” 나는 즉시 북조선 요리사들과 함께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초밥에 쓸 밥을 지었는데, 준비된 쌀은 고급 품종인 듯 점성이 너무
좋아 초밥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 쌀은 일본의 고급 품종인 사사니시키의 햅쌀보다도 질이 좋았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지고 온 고시히카리(일본에서 가장 애용되는 쌀 품종)로 다시
밥을 짓기로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새벽 두 시쯤 연회장에서 연락이 왔다. 연회장에 도착해보니 거기에는 이미 스물 두세 명의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ㄷ자형으로 길게 늘어선 테이불 중 가장 왼쪽에 놓인 것이 내가 초밥을
만들 테이불이었다. 새로운 도마도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테이블 앞에 서서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초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웨이터들은 초밥이 담긴 접시를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쉴 새 없이 날랐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가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임상종이 내게 와서 그 사람이 한 말을 전해주었다. “이것이 뭐냐고 묻습니다.” 내가 ‘마구로노토로데스’라고 대답하자, 임상종은 다시 그사람에게 다가가 ‘다랑어의 뱃살 부분’이라고 통역해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를 향해 다시 소리쳤다.

“다랑어 뱃살, 원 모어(One More)!" 그 사람이 바로 김정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다음날이 되어서야알았다. 그 무렵 김정일은 아직 장군이 아니었으며, 단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로 불리었다.

그 사람은 김정일이었다.

그 날은 북조선군 고위 관리의 결혼 기념일로, 밤늦도록 김정일의 전용 배에서 선상 파티를 벌였다고한다. 그 때문인지 그 사람은 한껏 기분이 고조된
듯 도로(배받이살), 방어, 전쟁이 등등 끊임없이 생선 이름을 들먹이며 ‘원 모어’를 외쳐댔다. 그때 나는 초밥을 만들면서 ‘이 사람은 기름진 음식을 꽤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그 사람이 내게 다가와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뒷정리를 하고 있으려니 오늘의 주최자인 듯한 사람이 와서 다소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 “오늘 수고했습니다.”그리고는 출장비라며 5만 엔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연회는 소강 상태를
보이면서도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나는 먼저 방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그때 나는 임상종에게 함께 왔던 일본인 여성 세 사람을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태국 여성들은 본래몸을 팔 목적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여성들마저 그런 처지에 놓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함께 돌아가는 것이 같은 일본 사람으로서 내가 할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날이 밝을 무렵 겨우 잠든 나는 점심 때쯤에 일어나서 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연회장은 깨끗이 정리된 상태였다. 창문밖으로는 잘 꾸며진 정원과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나는 간밤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창 밖의 풍경만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어제 같이 왔던 일본인 여성세 명과 태국인 여성 네 명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태국 여성 중에 가장 맏이라 할 수 있는 카타이에게 내가 잠든 이후의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녀는 일본을 세 번 정도 방문했던 경험이 있어 기본적인 일본어 회화는 가능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내가 물러난 뒤에 바이올린니스트가 네댓 명 와서 연주회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웅크린 채 바이올린을 켜는 재주를 가진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아침 7시가 되어서야 끝났다고 하니 연회는 밤새도록 이어진 셈이었다. 섹스를 했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만 저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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