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본인 요리인 수기..( 7 )

《 7 》편



■   日서의 언행 모두 감시돼 평양에 보고

◇   10년 동안 내 곁에 있어달라

○    파격적인 제안


1988년 5월, 나의 일시 귀국 날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8번 연회장의 오락장에 들어가자 김정일이 물었다. “일본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나?” “이번에는 3년 계약으로 왔으니 물론 돌아옵니다.” 내 말을 들은 김정일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후지모토, 10년 동안 내 곁에 있어주지 않겠나? 그렇게만 해준다면 평양에 초밥집을 하나 내주지. 그리고 매일 50만 엔을 주고 말이야. 초밥집의 이익금도 모두 자네가 가져.”

이 말을 듣고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북조선의 회사 조직은 모두 국가와의 합영회사이며, 이익배분도 7:3으로 국가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익금도 전부 내게 준다니, 나는 꿈을 꾸는 듯했다. 그런 좋은 조건을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파격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즉석에서 대답하는 것을 피했다. 일본에 돌아가 차근차근 생각해보겠다는 정도로 해두었다.

김정일은 알았다면서 내가 없는 동안에는 벤츠는 고려 호텔 주차장에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서 “초밥을 드시고 싶어도 한 달 정도만 참으십시오. 맛있는 것이 있으면 또 가져오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리고 김정일이 “이번에는 선물이 없네”라고 하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치도 않으십니다. 이렇게 멋진 제의를 해주신 것만으로도 과분할 따름입니다.”

김정일은 도대체 왜 내게 이처럼 호의적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날 밤 나는 지나치게 흥분한 탓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귀국 날 아침을 맞게 되었다. 오사카 공항을 경유하여 귀국한 나를 아내와 딸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나는 일본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맛있는 라면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즉시 가족과 함께 라면을 먹은 다음에 귀가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김정일이 제안한 내용을 끄집어냈다. 예상했던 대로 아내와 두 딸은 ‘절대로 안 된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북조선에서 일하게 된 뒤로 나는 가정을 거의 돌보지 못했다. 큰 딸이 벌써 고등학생, 작은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특히 큰 딸은 사춘기 시절을 거의 아버지 없이 보내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알게 모르게 나와 가족 사이에 커다란 골을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게는 항상 미안하게 여기면서도 이 골을 메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더욱더 어려운 일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저 막연하게 그런 생각에 휩싸였다.

●   일본에서의 말과 행동을 모조리 감시당하다


귀국한 지 1개월쯤 지났을 때, 닛초 무역상사 회장의 회갑잔치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회갑잔치가 열리는 마쓰모토까지 찾아갔다. 축하연에는 가수 야스다 쇼크·유키 사오리 자매 외에, 엄국지(조총련 산하의 금강산 가극단 소속 가수. 현재는 고인)도 참가했다. 엄국지라는 가수는 북조선에서 특히 유명하여 무슨 행사가 있을 때면 반드시 초청을 받았다. 축하연이 끝나자 친한 사람들 20명 정도가 어울려 2차를 가게 되었다.

술도 들어간데다 일본이라는 안도감이 있었기 때문인지 긴장이 완전히 풀린 나는 북조선에 대해 묻는 이런저런 질문에 신이 나서 대답했다. 김정일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흥미진진한 얼굴로 모두 나만을 주시하고 있었던 탓에 나는 나도 모르게 정도를 넘어서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날 내가 한 말은 전부 도청되고 있었다. 아니, 그 날만이 아니었다. 일본에 있는 동안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은 모조리 감시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고가 팩스를 통해 평양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6월에 북조선으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곧바로 임상종과 김영명의 호출을 받았다. 두 사람은 나를 앉혀놓고 취조하듯 물었다. “후지모토 씨, 일본에서 무슨 말을 했습니까? 마쓰모토에서는 어땠습니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들은 내가 술에 취해 말한 내용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나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내게 사죄문과 서약서를 쓰라고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5년 동안 일본에 가지 않기로 서약


김정일 지도자 동지.

얼마전 저는 일본에 돌아가 있는 동안 마쓰모토에서의 연회 도중에 지도자 동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공화국에서는 비밀을 지키고 있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사오니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건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일본에 돌아가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


나는 이때 비로소 북조선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무서운 나라인지 실감했다. 일주일 뒤 김정일이 드디어 나를 불렀다. 김정일은 내게 “후지모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게. 약속할 수 있나?”하고 물었다. “예, 약속드리겠습니다.” “좋아. 일본 사람은 한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 날 밤 김정일은 나를 용서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후지모토, 5년 동안이나 귀국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텐데.” 그 말을 듣고 나는 서약서 문구가 측근들에 의해 제멋대로 작성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때 작성했던 서약서를 계기로 나는 김정일의 요리사가 될 수 있었다. 김정일의 요리사가 된 뒤 나는 그와 함께 각지에 흩어져 있는 초대소를 누비고 다니며 아주 가까이서 김정일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닛초 무역상사와의 계약 기간은 끝났지만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가슴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8편에서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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