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9편

《 9 》편  


※ 10편은 《역사》파트가 아니라 《세계》파트에 올려져 있음


■   한국전쟁 전야 ㅡ 숙군, 국경분쟁 (1) / 숙군의 동기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화를 바꾸어 복으로 하는 능력이 주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전에 제주도와 여수, 순천의 반란은 한국에게 요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그 어마어마한 세포를 대내에 가진 채 6.25를 맞이하였다면, 한국군은 외압과 내란에 의하여 와해되었을 것이다. 

미군의 참전은 발판이 없었을 것이고, 한국군이 부산교두보
의 일익을 확보하고 인천상륙작전의 기반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군은 이와 같은 사건을 계기로 하여 대내에 잠식하던 세포를 배제하였다. 곧 숙군이다. 한국전쟁 때 한국군은 비록 서전에서는 패하였으나, 지구력으로 부산교두보를 지키는 일익알 담당할 수 있은 것은 숙군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의 숙군은 1948년 6월 18일, 제주도 토벌 중 제11연대장 박진경 대령이 중대장 문상길 중위(3기)의 일당 4인에게 암살된 때부터 시작되었다. 

정보국장 백선엽
 중령은 제주도에 날아가 범인 조사를 지휘하며, 전군적인 사상조사의 필요를 느꼈다.

 중령은 서울에 귀임하여 통위부 정보국과 총사령부 정보국을 합병한 것을 빌미로 작전, 방첩, 대외정보의 각과를 정비하고, 숙군 전문인 조사반 등을 신설하였다. 그리고 많은 인재를 모았다. 김점곤, 이세호, 김창룡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김종석과 최남근 중령 등 좌익분자는 철저한 우익을 가장하였기 때문에 좀처럼 그 정체를 밝히지 못하였다. 공산당 사냥의 명수 김창룡도 그 제육감으로 주목하였지만 거저는 아무 것도 없었다.

여순반란이 발발하자 백선엽 정보국장은 송호성 총사령관의 참모장 격으로 진압에 따랐다. 그러나 제4연대(광주)에 반군이 합류하는 자가 많아짐에 따라, 다른 연대에도 토벌에 소극적인 자가 줄을 이었다. 

이에 백선엽 정보국장은 정보국 소속 조사반을 광주
에 초치하여 숙청을 개시하였다.

조사반은 빈철현 대위(2기생, 후의 대령)를 장으로 하고, 이세호 2기생, 후 대장), 김창룡, 박평래, 양인석, 이희영 대위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단기간에 약 3000인을 조사하여 남로당 계열 150여 인을 적발하였다.

10월 하순, 진압에 출동 중인 제4연대가 광주에 집결을 명 받은 것은 이 조사를 위해서였다. 그 때에 나주의 분둔중대가 도주한 것은 이 적발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   숙군 방해


숙군(숙군(肅軍))에 즈음하여 어디에선지 출처를 알 수 없는 군 수뇌부에 대한 중상모략이 흘러나왔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중상은 다음 경로로 굠하게 유포(유포되었다.

그(1) 지하에 잠입해 있던 남로당 계열이 남북 교역에 종사하고 있는 상인과 북에서 잠입한 첩자에게 소문을 유포한다.

(2) 남의 상인은 신용을 얻기 위하여 교역에 즈음하여 이 소문을 북의 상인에게 퍼뜨리고, 첩자는 ‘북’의 정보기관에 보고한다.

(3) ‘북’에서는 이 소문에 달라붙어 다른 첩자를 남파하여 한국 안에 유포한다. 한국의 정보기관은 그것을 ‘북’에서의 정보로 캐치한다.

즉, 소문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하여 한국의 정보기관이 ‘북’에서 얻은 정보로서 그 공적이 되도록 조작한 것이다.

◇   그 중상모략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채병덕 참모총장.

해방 후 여운형이 지도한 건국준비위원회의 직계이며, 지금도 조선인민공화국의 건설을 획책하고 있다. 그는 일본 육사 49기이며 육군 소좌였기 때문에 친일 반역자로 숙청 대상이 될 염려가 있었다. 때문에 그를 구제한다는 약속으로 여운형 운동에 참가하였다.

그의 부모형제는 지금 평양에 있으며, 약제 교역으로 은밀히 연락원을 북한에 파견하고 있다. 김구(1949년 6월 26일 암살되었다)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임시정부계와 도모하여 정부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다.

○   정일권 작전참모부(부())장.

만주 봉천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출신이며,실은 조선인민공화국의 군사부(군사부 비밀당원이다.

○   백선엽 정보국장.

만군출신이며 채 총장과 동향으로서, 그는 평양 사범의 동창생 아무개를 통하여 ‘북’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

○   강문봉 작전국장.

만주 신경군관학교 출신으로서, 정일권 작전참모부(부())장의 직계이며 그도 인민공화국의 비밀당원이다.


○   원용덕 작참모부(부장.

만군 군의 중좌 출신으로서, 춘천 제4대장일 때에 경찰관에게 발포하라고 부추겨 춘천 군경 충돌사건을 일으켰으며 또한 경찰을 비방하였다. 그도 비밀당원이다.

즉, 숙군의 최고책임자들의 실각을 노렸다. 이와 같은 중상, 모략에 관하여 백선엽 국장(당시)은 “아주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 모략을 일일이 처리하다가는 아무 이도 하지 못하는 시대였다. 다행히 상사가 신뢰해 주어 일을 할 수 있었다” 하고 말하였다.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주모자들은 생명의 위험에 직면하면서 조사를 진행시켰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구 제6연대 숙청에 즈음하여 이영순 중령이 치약에 독극물이 첨가되었고, 조사주임 신철 대위(후 준장)가 습격 당한 일 등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10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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