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국정원 수사. (5)

( 5 )편


◇  안기부 신출내기 "마유미 옆의 여자? 내 신분은 일급비밀"


■  마유미 옆의 여자? 내 신분은 일급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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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카메라 앞에 선 국정원 최초 여 수사관 최** 씨, 박세직 당시 안기부 신임 부장 부부, <내일 일은 잘 몰라요>의 저자 이인숙 씨, KAL기 폭파범 김현희 그리고 여의도침례교회 한기만 목사(맨 왼쪽부터). 박 부장이 김현희에게 이인숙 씨를 소개하고, 이 씨 권유로 김현희는 종교에 귀의하게 됐다. 사진제공=최차우

 

이 글을 쓰면서 김현희의 얼굴을 자주 떠올렸다. 운명은 참으로 가혹한 것이다. 그녀는 젊었을 때 북한 공작원이 되었던 일로 평생 동안 회한과 고통의 삶을 살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북한 정권에 의해 테러리스트가 되어 죽는 것 못지 않게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 게다가 조작설로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나 역시 때때로 그런 질문을 받는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문이 열리며 트랩에서 마유미가 내릴 때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녀에게 쏠렸지만 차츰 그녀의 팔짱을 끼고 내리는 다른 여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다. 어떤 사람들은 김현희의 팔짱을 끼고 내린 나를 KAL기 승무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대공수사관이었기 때문에 나의 신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안에 부쳤다. 언론사들도 그 때문에 나의 얼굴을 전체가 아닌 반쪽만 나오게 해 주었다. 후에 김현희가 인터뷰한 여러 나라의 수사관이나 언론도 처음에는 김현희에 대한 인터뷰에 집중했으나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이면 은근히 나를 향해 수사관이냐고 묻고, 나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는 했다. 그 외에도 만나는 사람마다 관심을 보이며 나에 대해 궁금해 했다.
  


“정말 안기부 요원입니까?”


사람들은 내가 안기부 여자수사관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고는 했다.


“네. 수사관입니다.”


“권총도 가지고 다닙니까?”


어떤 사람들은 내 가방을 흘끔거리며 이상한 표정으로 묻고는 했다.


“아니요. 특별한 상황이 아닌데 왜 권총을 가지고 다니겠어요?”



“훈련도 받았습니까?”



“네. 받았습니다.”



“훈련으로 다져졌으니 특공대원 같은 몸을 갖고 계시겠군요.”


사람들은 나를 슈퍼우먼으로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고는 했다. 그런 질문을 받던 생각을 하자 새삼스럽게 나의 안기부 입사 시절이 떠올랐다.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85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IST)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육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우연히 같이 수강하던 연세대를 나온 한 친구가 자기는 안기부에 입사원서를 냈다고 했다.


“안기부가 뭘 하는 곳이야?”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인기부도 몰라? 안전기획부….”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창피한 얘기지만 중앙정보부에서 안전기획부로 이름이 바뀐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때까지 정보부와 안기부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이 안기부가 중앙정보부라고 말했다.


“게다가 월급도 다른 공무원들보다 많대.”


나는 월급이 다른 공무원들보다 많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졌다.


“그럼 나도 한번 지원이나 해볼까?”


나는 친구의 말에 안기부 입사시험을 보기로 했다. 그러나 서류 마감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했다. 지금처럼 전산화된 것도 아니고 대학에서 성적증명서를 발급받자니 며칠이 걸린다고 하기에 대학시절 받았던 성적표로 대신하는 등 부랴부랴 원서제출을 마쳤다. 원서를 접수하면서 알게 된 것이 안전기획부 여자수사관을 선발한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사무직이겠거니 했던 나로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여자수사관이 뭐하는 걸까? 부모님이나 주변 친지들에게 물어보아도 딱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거 혹시 밀봉교육 받고 북한에 파견되는 거 아니야?”


안기부 수사관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안기부는 모든 것이 비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알지 못한다. 친지들 중에는 북한에 파견되면 위험하니 시험을 보지 말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간첩인가? 무슨 밀봉교육을 받아요?”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나는 오빠에게 안기부 수사관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오빠는 당시에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오빠는 중령으로 예편했다.


“하는 일은 형사들이나 다를 바 없지만 대공수사를 전문으로 한다고 하더라.”


오빠가 어딘가에 알아보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오빠의 말을 듣고 필기시험을 보았다.

필기시험은 평소 취직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그럭저럭 볼 수 있었다. 이후 면접시험은 2차에 걸쳐 계속되었다.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지?”


당시에 수사국장이었던 사람이 면접을 보면서 질문을 했다.


“부모님이 계시고 오빠가 있습니다.”


나는 긴장하여 대답했다.


“아버님은 상업을 하신다고 되어 있군.”


그가 서류를 살피면서 말했다.


“네. 장사를 하고 계십니다.”


“최'' 씨, 최**씨는 자신이 수사관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수사국장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물었다. 나는 뜻밖의 질문에 당황했다. 답변을 잘못하면 불합격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되었다.


“아직 안기부 수사관이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집에서 엄마나 식구들이 놔두고 못 찾는 물건이 있으면 제가 찾아냅니다.”


나의 답변에 면접관인 수사국장이 웃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 때 합격을 통지받아 나는 마침내 안기부 여자수사관이 된 것이다. 1985년 9월의 일이었다. 나를 비롯하여 그날 합격한 여자들은 소위 안기부에서 처음으로 뽑은 여자수사관이었다. 안기부는 그때까지 남자 수사관들만 뽑았기 때문에 여성 피의자들을 수사할 때는 기능직 여사무원들을 동원하기도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그 무렵 북한 대남공작조직에서 여성공작원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그에 대응할 여성 수사요원들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여 선발한 것이다.

안기부는 1년에 한 번씩 정규과정으로 직원을 선발하여 1년간의 교육을 거쳐 현장에 배치하는데 우리는 신속하게 실무에 투입하자는 의도에서 특별여자수사과정이라는 명칭으로 6개월 단기 교육을 거쳐 곧바로 수사국으로 배치되었다. 나중에 김현희를 심문하면서 그녀도 북한의 대외정보 조사국에서 뽑는 공작원 양성 과정 중 단기반으로 선발되어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으로 비슷한 점이 많은 우리였다.


단기반이었지만 안기부의 여자 수사관 훈련은 혹독했다. 무엇보다 대공수사를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이론 교육과 함께 실전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우리는 이름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안기부 부훈처럼 음지에서 일을 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국가에 목숨을 바치고 내 부모님과 내 형제를 지키는 첨병이 된다.”


교관들은 투철한 국가관을 강조했다. 이론은 세계의 유명한 정보기관과 스파이들에 대한 것도 있었다. 암살범을 다룬 <자칼의 날>이라는 영화도 보았다. 남파 간첩들의 특징, 그들의 은신법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6개월이라는 단기반은 어떻게 생각하면 고된 훈련을 받는 우리에게는 거의 끝날 것 같지 않을 정도의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재기 발랄한 젊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땀을 흘리면서도 견딜 수 있었다.

내가 받은 훈련은 대부분 안기부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실시되었는데 구보, 합기도와 사격 훈련 등이었다. 공수부대에서 훈련을 받기도 했다. 공수부대의 훈련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격렬하다. 나는 몹시 고통스러웠으나 6개월 동안 잘 인내하면서 훈련을 마쳤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담력을 키우기 위해 한밤중에 공동묘지를 다녀오던 일이다. 경기도 어느 공동묘지였는데 캄캄한 밤중에 공동묘지에 올라갔다가 오는 것은 입이 마르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무서워도 견디자. 이런 훈련을 거쳐야 현장에 투입되어도 이겨 나갈 수 있는 거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공동묘지를 오르내리는 것은 영화나 만화에서만 보았던 일이다. 어쩌면 안기부 교관이 그런 훈련을 시킨 것도 영화나 만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매일같이 고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한동안 일반 회사에 들어갈 것을 공연히 안기부에 들어왔다고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6개월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실전에 투입될 수 있었다.

▲ 최** 씨의 첫 해외 출장지였던 바레인 리젠시 호텔 앞에서. 박 씨는 마유미를 압송하는 신병인수팀에 뽑혀 그를 호송하는 중대임무를 맡았다

안기부에 입사하여 내가 처음 맡았던 임무는 김만철 씨 일가족 귀순 사건이었다. 귀순자들이라도 위장 귀순인지 아닌지 조사도 해야 했고 그들을 보호도 해야 했다. 나는 김만철 씨 사건을 다루면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80년대 중반인데 북한 주민들은 너무나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KAL기 사건이 터져 나도 신병인수팀에 투입된 것이다.

바레인과 협상이 잘 이루어져 마유미를 압송하는 신병인수팀이 구성되자 나도 바빠졌다. 나는 그때까지 해외여행을 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여권도 준비해야 했다. 안기부 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마유미를 호송하기 위해 준비했던 자해 방지 기구들도 점검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이었다. 마유미를 호송하는 일이 워낙 중대했기 때문에 다른 부서 직원들은 물론 어머니 아버지에게조차 내가 마유미의 호송을 위해 바레인에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해외 출장이에요. 어딘지는 말할 수 없어요.”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겨우 그렇게만 말했다. 안기부 요원들의 교육 중에 비밀 엄수 교육은 철저하다. 워낙 기밀을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에 대부분 안기부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키고 무덤 속까지 가지고 간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이철희 차장은 운전기사에게조차 자신의 집을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신상을 비밀에 부쳤던 것으로 유명하다.


  6편에서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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