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6월 25일 전쟁 분석..(2).연재

《2》편


◇   ‘자유수호’전쟁인가? ‘조국해방’전쟁인가?

한국전쟁을 누가 도발했는지, 왜 도발했는지에 대한 교전 당사국의 주장은 70여년째 엇갈리고 있다.

북한(조선)은 미국의 아시아 침략에 맞선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르고, 미국은 북한(조선)을 앞세운 소련의 공산화에 맞선 '자유수호전쟁'이라 주장한다.

북한(조선)이 조국통일전쟁이라고 하지 않고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일본제국주의에 이어 38°선 이남을 강점한 미국에 맞서 한반도 전역의 식민지배를 끝장내기 위한 전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어느 쪽 주장이 더 설득력 있나?

중국이 공산화되었고, 38°선 이북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조건에서 소련이 전쟁을 통해 한반도 공산화를 시도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특히 당시 조선로동당이 38°선 이남에서까지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조건에서 선거를 통한 손쉬운 공산화를 두고, 전쟁을 선택했다고는 믿기 힘들다. 그것도 당대 최강의 무력을 지닌 미국이 버티고 있는 조건에서?

반면 미국은 처지가 달랐다.

공을 들였던 중국의 국공내전은 공산당 모택동이 승리하는 바람에 아시아로의 진출에 난관이 생겼고, 소련의 핵 개발로 군사 패권이 흔들리고 있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이 끝나 무기 소비가 줄자 미 군수산업체의 가동률이 절반 이상 줄면서 최악의 실업 사태를 맞는 등 미국경제는 공황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미 군정기간 친일파를 재등용하고, 인민위원회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한 것으로 하여 38°선 이남에서 미군정에 대한 민심 이반이 극심했다.

1949년에만도 11만 8천여 명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구금 또는 학살되었다

여순 사건과 4.3제주 학살, 그리고 여운형‧김구 선생의 암살도 이 기간에 발생했다.





미국이 이 모든 악재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한반도를 전초기지로 아시아 침략을 기도했다는 증거는 이외에도 많다.

미 군정, 38°선 이남을 전초기지화

UN 감시하에 한반도 전역에서 선거를 실시하라는 미‧소공동위원회 결정을 위반하고 1948년 5월 10일 38°선 이남에만 단독 선거를 강제한 미국은 이승만을 앞세워 한국의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권력을 독점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1948년 8월 24일 ‘과도기간 잠정적 군사 및 안전에 관한 행정협정’을 맺고 군 통수권과 경찰 지휘권 등을 계속 미국이 행사한다.

1949년 4월 미국대사관을 설치하고, 용산에 ‘미군사령부’를 주둔시킨다.

1950년 1월 25일 ‘미 군사고문단 설치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미군은 연대는 물론 대대급에까지 군사고문을 파견, 한국군의 훈련과 작전에 관한 지휘권을 완전히 틀어쥐었다.

앞서 1945년 11월에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를 창설하는 등 미군정 기간 6개 연대, 5개 여단 병력을 징집하고, 그해 12월에는 육군사관학교의 전신 ‘군사영어학교’를 설립해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친일파들을 미 군사고문에 충직한 한국군 장교로 길러냈다.

‘병역법’을 제정해 1948년 정부수립 시 5만 명이던 한국군을 1950년 전쟁 발발 당시 10만 명으로 늘이는 강제 징집을 실시했다.

한국과 미국은 ‘상호방위원조법’(1949)과 ‘군사원조쌍무협정’(1950.1)을 체결해 ‘원조’를 명분으로 전쟁물자를 들여온다. 특히 1950년 2월 미 국회에서 ‘원조법’을 제정해 전쟁에 필요한 군사 보급물자를 충당한다.

미국은 또한 38°선 이남 요충지에 군사기지를 설치했다.

김포, 수원, 원주, 오산, 군산, 함양, 대구, 남원, 광주, 제주 모슬포 등에 군용 비행장을 짓고, 인천, 부산, 진해, 포항을 해군기지를 전변시켰다

○ 치밀하게 준비된 미국의 도발 계획

미국의 시사 월간지 ‘라이프’의 1950년 8월호에는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서 한국전쟁을 시작할 때처럼 치밀하게 준비한 예는 지금까지의 어느 전쟁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전쟁에 개입하거나 침공할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 원인을 날조하거나 의도적으로 정보를 은폐‧왜곡하고(1차 세계대전), 때로는 상대방의 무력도발을 유도하려고 갖은 음모와 공작을 꾸며왔다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이 결코 예외로 될 순 없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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